논산훈련소에 입소해서 열심히 구르던 때였다.
당시에는 6주 동안 기초 훈련을 받은 후에 후반기 교육을 이어 받든지 아니면 자대 배치를 받든지 했다.
처음에는 ‘좌향좌’, ‘우향우’, ‘앞으로 가’ 같은 제식훈련부터 군생활의 여러 규칙들을 배웠다.
훈련소도 사람이 사는 곳이고 사람은 또 상황에 적응되기 마련이어서 2주 정도 지나니까 훈련소 생활도 익숙해졌다.
이제 군 생활에 조금 적응되려나 싶을 때 그 일이 일어났다.
여느 때처럼 내무반에서 쉬고 있는데 갑가지 조교가 들어왔다.
훈련병들은 “충성!”으로 경례를 하고 침상에 일렬횡대로 줄을 서서 동작 그만 자세로 들어갔다.
평상시 같으면 복장이나 내무반의 정리정돈 상태를 살피면서 한마디했을 텐데 그날따라 조교의 분위기가 달랐다.
아예 우리에게 편히 쉬라고 하고서는 잘 들으라며 지금부터 하는 얘기를 잘 들으라고 했다.
우리는 무슨 일인가 싶어 귀를 기울였다.
조교의 말에 따르면 전방에서 북한 인민군이 도발을 시작했다고 했다.
위에서는 진돗개 상황을 발령한 상태라고 했다.
당시 우리는 진돗개가 뭔지도 모르는 상황이었는데 뭔가 심상치 않은 일이 벌어진 것은 틀림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닌 게 아니라 조교는 이제 곧 우리도 전방에 투입될 것이라고 했다.
아직 우리는 사격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데 전장에 투입되면 그야말로 총알받이가 될 것이었다.
조교는 그게 걱정된다고 했다.
6.25 전쟁 때도 학도병으로 자원한 대부분의 군인들이 총알받이로 죽었다고 했다.
그런 말은 굳이 하지 않아도 우리 스스로 잘 알아들을 수 있었다.
조교는 지금이 어쩌면 부모님께 편지를 쓸 수 있는 마지막 시간이니까 각자 편지 한 통씩 쓰라고 했다.
비상이 떨어지면 그마저도 못한다고 했다.
훈련소에서는 텔레비전도 신문도 볼 수 없었기 때문에 우리는 정말 심각한 일이 벌어진 줄로만 알았다.
조교의 말이 떨어지자 내무반에는 깊은 침묵이 흘렀고 훈련병들은 각자 조용히 편지지와 볼펜을 꺼내 들었다.
무슨 말부터 써야 할지 감감했다.
어머니는 큰아들이 건강하게 군복무를 마치고 돌아오기를 기도하고 계셨을 텐데 여차하면 유품을 안고 오열할 수도 있겠다 싶었다.
미안했다.
이럴 줄 알았으면 평상시에 시간이 있을 때 더 잘해드렸을 텐데 그러지 못한 게 미안했다.
입술을 깨물고 겨우 몇 줄 써 내려갔는데 저쪽에서 ‘흑흑’하는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어떤 놈이 감정을 추스르지 못하고 그만 터져버린 것이다.
그 소리가 신호가 되었는지 여기저기서 흐느끼는 소리가 들려왔다.
급기야는 한 놈이 갑자기 “어머니!”하고 흐느꼈다.
그놈은 식구들에게 자기가 군대 간다는 말도 안 하고 온 놈이었다.
어쨌거나 그놈이 어머니를 부르는 바람에 내무반은 삽시간에 울음바다가 되어 버렸다.
나도 더 이상 편지를 쓸 수가 없었다.
그 모습을 한참 동안 바라보고 있던 조교는 갑자기 크게 웃으면서 미안하다고 진짜 전쟁이 난 게 아니라 장난이라고 했다.
울다가 벙찐 우리들은 뭐가 진실인지 헷갈리면서도 전쟁이 난 게 아니라니까 다행이다 싶었다.
아마 당시 분위기상 조교에게 뭐라고 따질 수도 없었을 것이다.
조교는 우리가 쓴 편지는 정말 진솔한 내용으로 쓴 거니까 자기가 잘 보관하겠다고 하면서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나가버렸다.
정말 어처구니없는 일이었다.
그러나 그 순간 나도 그렇고 내 옆의 동료들도 그렇고 정말 중요한 것 한 가지는 배웠다.
평상시에는 깨닫지 못하고 있었는데 절박한 순간이 오면 그때 떠오르는 얼굴은 오직 가족밖에 없다는 사실이었다.
친구들은 하나도 생각나지 않았다.
그저 어머니, 누나들, 동생들 생각뿐이었다.
아버지가 살아계셨다면 아버지 생각도 했을 것이다.
나에게 가장 소중한 사람들, 그들은 바로 가족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