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료한 오후 시간에 커피나 한잔 마시고 정신을 차릴까 해서 사무실을 나섰다.
고작 몇 걸음을 옮겼는데 맞은편에서 걸어오던 사람이 갑자기 인사를 했다.
순간 내가 낯설어하자 마스크를 살짝 내렸다.
아! 우리 동네에서 작은 음악박물관을 운영하시는 관장님이셨다.
음악에 문외한이 나에게 재미있는 음악 이야기들을 들려주시고 악기도 보여주셨던 분이시다.
이렇게 가끔씩 우연찮게 만나게 되는데 그날도 그런 날이었다.
서로 어디에 가시냐고 상투적인 인사를 나누었다.
커피 한잔 마시러 간다니까 관장님도 곧 갈 테니 기다리고 있으라고 하셨다.
커피 한잔 시켜서 홀짝거리고 있었는데 관장님이 들어오셨다.
뭔가 즐거우신 듯이 활짝 웃으시는데 손에는 종이 한 봉다리가 들려 있었다.
그게 뭐냐고 물으니 풀빵이란다.
풀빵.
한 여남은 개 사 오신 것 같은데 옆에 앉아 있는 사람들에게 하나씩 돌리신다.
먹어도 배부르지 않는다며.
내 기억 속 풀빵은 비 오는 날 골목길의 허름한 처마 밑에서 시작한다.
날씨 맑은 날의 풀빵에 대한 기억이 없는 걸 보면 그 집은 풀빵 전문점이 아니었다.
아마 날씨 좋을 때는 밭에 나가 일을 하고 비 오는 날에는 풀빵을 만들어 팔았던 집인 것 같다.
가난한 시절이었다.
먹을 게 많지 않았다.
지금처럼 풀빵 기계에서 금방금방 찍어내는 누런 풀빵이 아니었다.
팥 앙꼬가 들어간 하얀색 풀빵이었다.
풀빵을 먹는 맛도 좋았지만 풀빵집을 향해 가는 길이 환상이었다.
물론 비에 젖어 질척거리는 길이었다.
무거운 공기가 골목을 가득 덮고 있었다.
까만색 우산을 쓰고 가는 발걸음은 천천히 걷고 있었지만 뛰고 있었다.
두꺼운 공기 사이로 구수한 기름 냄새가 흘러왔다.
뭔가 노릿노릿하게 익어가는 냄새도 날아왔다.
침이 꼴깍 넘어가는 그때가 가장 맛있는 순간이었다.
풀빵집에서 가장 큰 놈들을 골라 누런 종이 봉다리에 담았다.
빵을 만들어 먹으려면 밀가루를 찰지게 해야 하는데 그러면 밀가루가 많이 들어간다.
밀가루가 귀한 때였다.
서양사람들이 먹는 빵처럼 두툼하게 만들기에는 재료가 너무 빈약했다.
그래서 우리네 어머니들이 풀빵을 고안했을 것이다.
적은 양의 밀가루지만 물을 많이 부어서 풀을 쑤듯이 불리고 그 안에 앙꼬를 살짝 넣어서 적당히 부피가 부풀어오르게 만든 것이었다.
그 유래를 굳이 알아보지 않더라도 분명 그랬을 것이다.
우리네 어머니들은 음식 만드는 데는 천재들이셨으니까 말이다.
이런 이야기를 주고받으면서 풀빵 한입에 커피 한 모금 마셨다.
달짝지근한 게 어릴 적 먹었던 풀빵 맛은 아니다.
그래도 풀빵이 손에 쥐어지면 나는 언제나 어린 날 빗소리 들리는 그 골목길을 걷는다.
6남매가 어우러진 집이어서 풀빵을 하나라도 더 먹으려면 풀빵집까지 심부를 갔다 오는 게 나았다.
오는 길에 하나 슬쩍할 수 있으니까 말이다.
가난한 것이 친구였고 못 먹는 것이 취미였다.
누나들이 씹다가 기둥에 붙여놓은 껌을 내가 살짝 떼어서 씹다가 몰래 다시 붙이곤 했다.
그게 이상하지도 않았고 비위 상하지도 않았으며 흉이 되지도 않았다.
우리 집만 그런 게 아니라 옆집도 그랬다.
세상이 다 그렇게 사는 줄 알았다.
세상이 다 그렇게 살 줄 알았다.
나도 계속 그렇게 살 줄 알았다.
너무나 많이 변해서 그때가 꿈인지 지금이 꿈인지 분간이 안 간다.
분명 전철역 앞에 풀빵집이 있는데 내 발걸음이 그리로 성큼 다가가는 일은 거의 없다.
가난했던 친구가 떠나가고 못 먹었던 취미가 사라져 버렸기 때문이다.
이제는 꽤 괜찮은 도시 사람 행세를 한다.
풀빵 같은 것은 언제든지 사 먹을 수 있게 되었다며 고개를 빳빳하게 치켜든다.
그러나 풀빵집 앞을 지나칠 때마다 고개가 살짝 돌아가는 것은 여전히 내 손에 가난했던 날의 풀빵 한 봉다리가 들려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