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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은석 May 11. 2022

내 발달단계는 어디쯤에 왔을까?


사람의 발달 단계에 대해서 여러 사람들이 이론을 제시하였다.

프로이트는 구강기, 항문기, 남근기, 잠복기, 생식기 등으로 심리성적인 발달 단계를 제시하였다.

피아제는 인지발달이론을 주장했고 에릭슨은 성격발달이론을 내세웠다.

우리도 흔히 영아기, 유아기, 소년기, 청소년기, 청년기, 장년기, 노년기 등 연령대별로 나누인 발달단계를 받아들인다.

발달단계를 구분했다는 것은 곧 사람은 어느 정도 시간이나 상태가 되면 변한다는 사실을 내포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변화되어야 한다는 어떤 당위성도 갖고 있다.

변화되어야 할 때 변화되지 못하면 뭔가 문제가 있다는 느낌이 들 것이다.

나이가 열 살이 되었는데 여전히 똥오줌을 못 가린다면 식구들도, 본인 자신도 마음이 심란할 것이다.

서른 살이 되었는데 초등학생처럼 말하고 행동한다면 참 곤란할 것이다.

반대로 초등학생이 어른처럼 행세하면 애늙은이 취급을 받을 것이다.




인간의 발달단계를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 또 있다.

독일의 철학자 니체이다.

그는 인간이 낙타, 사자, 어린아이의 단계를 거칠 수 있다고 했다.

모든 인간이 거쳐 가는 단계가 아니라 엄청 노력하고 생각하고 자기 계발을 해야만 그 단계를 거칠 수 있다.

사막의 낙타는 보이지 않는 오아시스를 꿈꾸며, 또 먼 곳에 있는 목적지를 기대하며 묵묵히 자기 등 위에 올려진 짐을 지고 간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기본적으로 이런 삶을 산다.

내일이면 나아지겠지 하는 기대감이나 죽은 후에는 좋은 곳에 갈 것이라는 신념을 가지고 자신에게 주어진 삶을 인내하면서 살아간다.

이런 사람에게 삶은 반드시 감당해야만 하는 숙제처럼만 여겨질 것이다.

그러나 그 신념 같은 것이 사실은 아무것도 아니라면 어떻게 되겠는가?

기껏 지금까지 추구했던 신념이 거짓으로 판명 난다면 어떻게 될까?

그럴 때는 정말 멘붕이 올 것이다.




낙타처럼 사는 사람은 언젠가 무거운 짐들을 등에서 내려놓을 필요가 있다.

그 짐들은 숙제처럼 반드시 해야만 하는 일이라고 믿었다.

안 하면 큰일 나는 줄 알았다.

그런데 그 짐을 내려놔도 큰 문제가 없다는 것을 깨닫는다.

내가 안 하면 안 되는 일인 줄 알았는데 내가 안 해도 괜찮았다.

그런 경험을 하면 사람은 사자의 단계로 진입한다.

의무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살 수 있게 된 것이다.

가고 싶은 데로 마음껏 뛰어다닌다.

내가 해야만 하는 일을 하는 게 아니라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한다.

어디에도 구속되지 않은 세상에서 제일 자유로운 사람이다.

하지만 어느 순간 마음껏 달리는데 목표 지점이 없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하고 싶은 일을 다 하고 사는데 왜 그 일을 하는지 모르는 상태에 직면한다.

자기가 꼭 해야 하는 것으로부터는 자유를 얻었는데 자기가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자유는 얻지 못했다.     




사자처럼 사는 사람은 언젠가 사방팔방으로 뛰어다니는 일을 멈추고 곰곰이 생각해보아야 할 필요가 있다.

마음 내키는 대로 사는 게 좋은 것만은 아니다.

사람은 자기 인생이 어떤 의미를 지니기를 바란다.

의미 없는 삶은 계속 살아갈 가치를 못 느낀다.

등에 지워진 짐을 지고 가는 낙타의 의무는 이미 사라졌다.

제 맘대로 뛰어다니던 자유분방한 사자처럼 사는 삶도 지겨워졌다.

그때 눈에 들어오는 게 어린아이의 삶이다.

어린아이는 사는 게 짐스럽지가 않다.

꼭 해야만 하는 일이라고 믿지도 않는다.

의무 같은 것은 금방 잊어버린다.

그렇다고 해서 사자처럼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만 하지도 않는다.

어른들의 지도와 교훈도 받는다.

그러면서 날마다 발전한다.

그래서 니체는 어린아이와 같은 인간이 되기를 바랐던 것 같다.


내 발달단계가 어디쯤에 왔는지는 모르지만 계속 발전해야 한다는 것 한 가지는 잊지 말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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