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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은석 May 16. 2022

상처가 승리의 보증수표다


2,500년 전 고대 그리스에는 소포클레스라는 걸출한 인물이 있었다.

그는 어렸을 때부터 노래를 잘 불렀으며 성인이 되어서는 뛰어난 정치력과 지도력으로 군지휘관을 역임하기도 했다.

그러나 후대의 사람들은 그를 최고의 극작가 겸 시인으로 기억한다.

그가 지은 비극 중에 필록테테스(Philoktetes)라는 작품이 있는데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트로이전쟁을 배경으로 한다.

트로이전쟁은 트로이의 왕자 파리스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다고 하는 스파르타의 왕비 헬레네를 납치하면서 시작되었다.

부인을 잃은 스파르타의 왕 미넬라오스는 단단히 화가 나서 그리스 연합군을 이끌고 트로이를 공격하였다.

파리스는 아테네의 장군 아킬레스의 발뒤꿈치를 화살로 맞춰 그를 죽음에 이르게 하였지만 계속되는 전쟁 중에 필록테테스가 쏜 화살에 맞아 전사하였다.

그리스 연합군은 그 유명한 트로이 목마를 이용하여 트로이를 멸망시킨다.




필록테테스는 양을 찾으러 길을 나섰다가 우연히 헤라클레스가 죽어가는 현장을 지나게 되었다.

헤라클레스는 독에 감염되어 고통스럽게 죽어가고 있었는데 자신의 고통을 줄이려고 장장을 쌓아놓고 그 위에 앉아있었다.

누군가 장작더미에 불을 붙여주기를 바랐던 것이다.

그러나 아무도 장작에 불을 붙이려 하지 않았다.

그때 헤라클레스는 지나가던 나그네인 필록테테스에게 장작에 불을 붙여주면 자신의 활과 화살을 주겠다고 했다.

헤라클레스의 말이 무서웠는지 그의 간청에 마음이 동했는지 필록테테스는 장작에 불을 붙여주었고 헤라클레스의 활과 화살을 갖게 되었다.

그 후 필록테테스는 부지런히 활쏘기 연습을 하여 최고의 궁사가 되었다.

그 누구든 헤라클레스의 화살에 맞으면 생명을 부지하지 못했다.

그런데 이 뛰어난 궁사인 필록테테스는 트로이로 전쟁하러 가던 중에 독사에게 물려 렘노스섬에 버려지게 되었다.




그리스 연합군은 10년 동안 트로이를 공격하였지만 트로이의 저항도 만만치 않았다.

그리스 연합군이 트로이전쟁을 이길 수 있는 방법은 오직 헤라클레스의 화살을 가져와야만 한다는 예언이 나돌았다.

그리스군은 오디세우스와 네오프톨레모스를 렘노스섬으로 보내어 헤라클레스의 화살을 가져오라고 하였다.

그들이 섬에 도착했을 때 놀랍게도 필록테테스가 살아 있었다.

그런데 필록테테스는 아픈 몸을 이끌고 전장으로 가려 하지 않았다.

몸도 아팠겠지만 전에 버림받은 마음이 더 아팠을 것이다.

오디세우스는 네오프톨레모스에게 필록테테스를 속여서라도 데려가자고 했다.

고향으로 데려다주는 척하면서 트로이로 데려가자고 한 것이다.

그에게는 헤라클레스의 화살만 있으면 되었다.

하지만 네오프톨레모스는 거짓말을 하는 게 싫었다.

그는 솔직하게 자신의 마음을 고백하였고 필록테테스의 용서를 구했으며 결국 그를 설득시켰다.




그리스군에서는 마카온을 통해 필록테테스의 상처를 치료해주었다.

몸과 마음이 회복된 필록테테스는 트로이전쟁에 합류하여 헤라클레스의 화살로 트로이의 왕자 파리를 쏘아 죽였다.

그뿐만 아니라 필록테테스는 트로이 목마에도 숨어 들어가서 트로이 군대를 함락시키는 데 큰 힘을 보태주었다.

그리스가 승리하려면 헤라클레스의 화살이 필요했다.

그런데 승리의 보증수표인 헤라클레스의 화살을 가져가려면 상처 입은 필록테테스도 데려가야만 했다.

그리고 필록테테스를 치료하지 않고서는 헤라클레스의 화살을 사용할 수가 없다.

결국 헤라클레스의 화살과 필록테테스의 상처는 함께 간다.

필록테테스의 상처를 외면하고서 화살만 가져갈 수는 없었다.

어쩌면 우리의 삶이 이와 비슷하다.

상처를 돌보지 않으면 승리의 영광도 없다.

승리의 순간에 뒤를 돌아보면 깊게 파인 상처가 보일 것이다.

상처가 곧 승리의 보증수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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