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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을 들으며 별의별 생각을 다 한다

by 박은석


나는 음악에 대해서는 잘 모르지만 음악을 들으며 혼자만의 딴생각을 하는 건 잘한다.

예를 들면 드보르작의 신세계교향곡을 들으면서 마치 내가 거대한 범선을 타고 대서양을 횡단하는 생각을 한다.

배를 타 본 사람은 육지가 안 보였을 때의 두려움을 이해한다.

배를 타고 하루만 나가도 망망대해이다.

땅이 안 보이는 순간 불안감이 엄습한다.

마음속으로는 이 배가 혹시 고장이 나서 난파되는 것은 아닐까? 배에 구멍이 생긴다면 어떻게 될까? 큰 풍랑을 만난다면 무사할 수 있을까? 별의별 생각을 다한다.

사람은 땅에 발을 붙이고 사는 존재이기 때문에 땅이 안 보이는 순간 존재의 두려움을 느끼게 된다.

유럽에서 미국으로 가는 뱃길은 그런 두려움을 느끼기에 딱 좋은 코스였다.

대항해 시대에는 그 바닷길에서 숱한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고 허다한 질병들을 겪어야만 했다.

그들의 소원은 빨리 육지에 닿는 것이었다.




커피 마시기를 좋아했던 사람들은 그 긴 여행 동안 커피를 못 마신 채로 어떻게 견디나 고민을 많이 했을 것이다.

커피를 마시기 위해서 기본적으로 갖춰져야 할 뜨거운 물을 구하기가 어려웠기 때문이다.

배 안 아무 데서나 불을 피울 수 없었다.

역경을 극복하는 게 인류 문명의 역사가 되는데 커피도 그랬다.

뜨거운 물을 구하지 못하자 커피에 중독된 어떤 사람이 차가운 물로 커피를 내리기 시작한 것이다.

우여곡절 끝에 괜찮은 맛을 낼 정도가 되었고 네덜란드 뱃사람들에게 그 방법이 유행했다.

그래서 그들처럼 차가운 물로 추출한 커피를 더치커피라고 부르게 된 것이다.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은 그 긴 여행 동안의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서 저녁이면 바이올린을 켜고 노래를 부르기도 했을 것이다.

그렇게 배 안에서는 카페도 생겼고 음악회와 무도회도 열렸다.

사람들은 그렇게라도 해서 마음속의 두려움을 견디려고 했다.




하루가 지나고 또 하루가 지나고 지나온 날들이 쌓여갈 때쯤이면 이제 곧 육지가 나올 것이라는 희망이 새록새록 더해갔을 것이다.

돛대 위에 올라가서 망원경으로 앞을 내다보던 소년 선원이 저 멀리 푸르스름한 것을 보고서는 큰 소리로 외쳤을 것이다.

"육지다! 육지가 보인다."

그 소리를 들은 사람들은 갑판으로 뛰어 올라와서 서로 조금이라도 먼저 육지를 보려고 몸싸움을 펼쳤을 것이다.

이제는 살았다는 안도감과 함께 신대륙에서의 새로운 삶을 꿈꾸었을 것이다.

드보르작의 신세계교향곡은 나에게 그런 기분을 준다.

따라라 라라라 따라라 라라라.

익숙한 선율이 울려 퍼진다.

처음에는 작은 소리로 점차 큰 소리로 말이다.

멀리서 보이던 육지가 점점 가까이 다가올수록 음악의 선율도 커진다.

드보르작의 마음도 그랬을 것 같다.

뉴욕의 음악원에서 음악원장 자리를 맡아달라고 했을 때 그에게는 원대한 꿈이 있었다.




새집도 몇 년 살고 나면 낡은 집이 되듯이 신대륙이라 불리던 곳도 몇 년 지나니 구대륙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오히려 옛것이 더 좋고 우리 것이 좋은 것이라는 생각도 들었을 것이다.

<고향의 봄>을 부르면 눈시울이 뜨거워지는 게 그런 이유일 것이다.

지금이 훨씬 좋은 세상이지만 고향의 봄을 부르는 순간 그때로 돌아가고 싶은 것이다.

드보르작도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미국에서의 3년 시간을 보내고 도망치듯이 미국을 떠나갔으니 말이다.

새것이 다 좋은 것은 아니다.

꿈을 이루고 유명인사가 되는 것이 마냥 좋은 삶이라고도 할 수 없다.

타국에서 유명인사로 사는 것보다 고향에서 소박한 삶을 사는 게 더 부러울 수 있다.

그래서 드보르작은 다시 자기 고향 체코로 돌아갔을 것이다.

블타바강이 유유히 흐르는 프라하의 강변이 신세계보다 더 아름답다고 여기면서 말이다.

이렇게 나는 음악을 들으며 별의별 생각을 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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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세계교향곡 한번 감상해 보세요

https://youtu.be/UnorZdEBkS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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