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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은석 Jun 08. 2022

몇 수 정도 내다보는 지혜가 있으면 좋겠다


서한 시대에 한영이라는 학자는 널리 알려진 이야기들을 모아서 <한시외전(漢詩外傳)>이라는 책을 엮었다.

이 책은 역사적인 사건이나 고사성어를 소개하고 이어서 한두 구절의 시를 덧붙임으로써 쉽게 이해할 수 있게 하였다.

책 내용 중에 당랑재후(螳螂在後)에 대한 이야기가 있는데 눈앞의 욕심에 눈이 멀어서 위험을 보지 못하는 우리네 삶을 잘 보여준다.

초나라 장왕(莊王)이 진(晉)나라를 치려고 하면서 신하들에게 간언을 하지 말라고 엄히 명하였다.

그때 손숙오(孫叔敖)라는 재상이 왕의 명을 어기고 감히 왕에게 간언하였다.

“신은 채찍의 엄함을 두려워해 아버지에게 감히 간언하지 못하는 자는 효자가 아니며, 부월(斧鉞)의 형벌을 두려워해 감히 군주에게 간언하지 못하는 자는 충신이 아니라고 들었습니다.” 자칫하면 정말 도끼가 그의 목을 치고 톱이 그의 몸을 가르는 부월(斧銊)형을 받을 수 있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손숙오는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장왕에게 아뢰었다.

“신의 정원에 느티나무가 있는데 그 위에 매미가 있었습니다.

매미는 날개를 펴고 슬피 울면서 맑은 이슬을 마시려고 하는데 그 뒤에서 사마귀가 자기를 잡아먹으려고 다가오는 것을 알지 못하였습니다.

그런데 그 사마귀는 매미를 먹으려고 하면서도 자기 뒤에 참새가 자신을 잡아먹으려고 하는 것을 알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참새는 사마귀를 잡아먹으려고 하면서도 자기 뒤에서 어린아이가 자기를 잡으려고 새총을 겨누는 줄을 알지 못했습니다.

그뿐만이 아니라 어린아이는 참새에게 새총을 겨누면서도 자기 발 앞에 깊은 웅덩이가 있는 것을 알지 못했습니다.

이들은 모두 눈앞의 이익 때문에 자기 뒤에 위험이 있는 것을 돌아보지 못했습니다.”

그 말을 들은 장왕은 자신이 정벌하고자 하는 나라가 있지만 다른 나라 역시 자신을 노리고 있다는 점을 깨달았다.

그래서 더욱 신중하게 전쟁에 임하였다.

그 결과 그는 마침내 춘추오패(春秋五霸)가 될 수 있었다.




사실 당랑재후(螳螂在後)의 고사성어는 장자의 이야기에도 이미 나와 있다.

어느 날 장자가 자기 눈앞을 지나가는 까치를 잡으려고 남의 밤밭에 들어갔다.

밭에 들어가서 보니까 매미 한 마리가 나무에 붙어서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그런데 그 뒤에 사마귀가 매미를 잡으려고 다가가고 있었다.

그리고 사마귀 뒤에는 까치가 사마귀를 잡으려고 하고 있었다.

까치 뒤에는 물론 장자가 까치를 잡으려고 잔뜩 벼르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밭을 지키는 사람이 나타나서 장자에게 호되게 야단을 쳤다.

왜 남의 밤밭에 들어왔냐고 하면서 장자를 도둑놈 취급하였던 것이다.

그 일이 얼마나 창피했었는지 장자는 무려 3개월 동안 방 안에 틀어박혀서 밖으로 나가지도 않았다고 한다.

그 제자들이 무슨 일이냐고 여쭈었는데 장자는 “이해에 눈이 멀어서 그만...”이라며 말을 흐렸다고 한다.

장자도 이랬다는데 나 같은 사람은 오죽할까?




낚시꾼들은 갯지렁이 한 마리 먹으려고 낚싯바늘을 덥석 물어대는 물고기가 어리석다고 할 것이다.

하지만 사람이라고 별반 다르지 않다.

당장 눈앞에 보이는 이익을 좇아서 우르르 몰려다니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

조금만 지나면 부끄러운 일이고 부질없는 일이 될 수도 있는데 그 일에 목숨을 거는 경우도 많다.

주변을 살피지도 않고 무조건 앞으로만 달려 나가려고 한다.

하지만 빨리 가는 길이 오히려 손해 보는 길이 될 수도 있다.

다른 사람들은 나처럼 생각을 못하기 때문에 더딘 것이 아니다.

내가 보지 못하는 더 크고 넓은 그림들을 보고 있어서 천천히 움직이고 있을 것이다.

내 뒤에 뭐가 있는지 돌아보아야 한다.

그 뒤에 또 뭐가 있는지 보아야 한다.

바둑 기사들처럼 적어도 몇 수 정도 내다보는 지혜가 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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