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일본사람에 대한 불편한 마음이 있다.
일본사람 중에서 나에게 해코지를 한 사람이 있는 것도 아닌데 일본사람을 보면 불편하다.
내 뼛속 깊이 새겨져 있는 유전자 때문일 것이다.
일본사람은 왠지 믿지를 못하겠고 그 속에 무슨 꿍꿍이가 있는 것 같다.
겉으로는 웃으면서 야들야들하게 말을 하지만 속으로는 시커먼 뭔가가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든다.
이런 내가 어쩔 수 없이 일본사람과 며칠간 동행을 하게 된 적이 있다.
서른 살쯤에 배낭여행으로 터키를 둘러볼 때였다.
터키 남서쪽의 이즈미르라는 도시에서 동쪽에 있는 갑바도기아 지방으로 이동을 할 때였는데 내가 갈 때마다 이 일본사람이 내 근처에 알짱거렸다.
한눈에 봐도 나보다 네댓 살은 어려 보였다.
버스를 타려고 터미널에 서면 그도 거기에 있었고 버스를 타면 내가 탄 버스에 그도 탔다.
버스 안에 동양인이라곤 그와 나 그리고 내 아내밖에 없었다.
이렇게 가는 곳마다 계속 마주칠 거라면 인사라도 하자고 마음먹었다.
헬로우?
하우 아 유?
웨얼 아 유 컴 프럼?
왓츠 유어 네임?
내가 할 수 있는 영어는 다 동원했다.
하! 그런데 이 사람이 나랑 영어 실력이 비슷했다.
자기는 교토대학교 학생이라고 하길래 내가 교토대학교가 어느 정도 수준이냐고 물었다.
그랬더니 도쿄대학 다음으로 좋은 학교라나 도쿄대학과 같은 레벨이라나 대답했다.
그런가 보다 했다.
내가 보기에는 도쿄대학이든 교토대학이든 고만고만하게 여겨질 뿐이었다.
우리가 서울에서 왔다고 하니까 자기는 얼마 전에 부산에 들렀던 적이 있다고 했다.
원래는 중국 여행을 하기 위해 길 떠난 것인데 여행을 마치고 돌아가는 길에 부산에 잠깐 들른 것이라고 했다.
여기까지는 영어로 대충 이야기를 나눴는데 나나 그나 영어의 밑천이 떨어졌다.
더 이상 할 이야기가 없었다.
내가 일본어를 할 수 있는 것도 아니었고 그가 한국어를 할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렇게 어색하게 서로 멀뚱멀뚱 쳐다보다가 서로 관심 없다는 듯이 눈을 감고 잠이나 청해야 할 처지가 되었다.
마지막으로 한마디 물어보자고 해서 중국에는 무슨 일로 갔었냐고 했다.
그랬더니 이 친구가 자기가 중국어를 조금 배웠는데 그 실력을 써먹을 겸 겸사겸사 여행했다고 했다.
‘어라 이 친구 봐라.’ 나도 대학시절에 2년 동안 중국어를 공부했었는데 모처럼 실력 발휘를 해 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그래서 이번에는 중국어로 아까와 비슷한 인사를 나눴다.
니 하오 마?
니더 밍즈 션머(네 이름이 뭐냐)?
니더 찌아 짜이 날(너네 집 어디 있냐)?
이런 식이었다.
그러면 그 친구도 중국어로 떠듬떠듬 대답을 했다.
그가 물어보면 내가 대답을 했고.
참 다행스러운 게 중국어 실력도 나와 비슷비슷했다.
그러니까 유창하게 국제정세를 이야기하고 문학과 예술을 토론할 정도는 절대 아니었다.
어디 가서 길 잃어버리지 않을 정도의 실력, 식당에 가서 굶지 않고 무슨 메뉴라도 시킬 정도의 실력이었다.
이야기를 몇 마디 주고받으면서도 속으로 얼마나 우스웠는지 모른다.
한국인과 일본인이 말이 안 통해서 중국어로 얘기를 했다.
그렇게 말을 나누다 보니까 일본사람도 괜찮게 여겨졌다.
남남이 아니라 오랜만에 만난 먼 친척 동생 같은 느낌도 들었다.
그래서 갑바도기아의 식당에서는 한사코 더치페이하자고 하는 그에게 형이 사주는 것이라 생각하고 맛있게 먹으라고 하기도 했다.
파묵칼레의 노천 온천에서 그가 렌즈를 잃어버렸다고 했을 때는 그와 함께 렌즈를 찾겠다며 그 넓은 온천을 헤집기도 했다.
여행길의 동반자란 어느 순간에는 헤어져야 하듯이 한 삼일간의 여행 끝에 그와 헤어져야 할 시간이 되었다.
잘 가라며 혹시나 기회가 되면 다시 만나자고 했다.
강산이 두 번 변할 만큼의 시간이 지났다.
그도 지금쯤은 중년의 아저씨가 되어 있을 것이다.
사진 앨범을 들추면 그와 함께 찍은 사진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렇지 않기로 했다.
그와의 추억은 마음속에 남기는 게 좋을 것 같다.
그 한 사람 때문에 일본사람에 대한 나의 마음이 많이 너그러워졌다.
일본사람 중에도 좋은 사람이 많다.
내가 몰라서 그렇지 좋은 사람이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