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죽음과 나의 신앙고백 사이의 시간들

by 박은석


딸아이를 장례식장에 데려다줬다.

같은 반 친구의 엄마가 세상을 떠나셨다고 한다.

평상시 말수도 적은 남학생이어서 친구도 많지 않았다고 한다.

엄마가 암 투병 중이었다는데 막냇동생이 세 살이라고 했다.

딸아이가 반 학생들을 대표로 부반장과 함께 문상을 갔다.

내 심장도 쿵쾅거리는데 딸아이와 반 아이들의 마음은 오죽할까.

갑작스레 엄마를 잃은 아이와 그 가정은 어떻게 살아가려나.

살아가다 보면 살아가기는 할 테지만, 엄마 없는 하늘 아래에서 얼마나 많은 눈물을 흘릴까?

인생의 통과의례를 지날 때마다 ‘이럴 때 엄마가 계셨다면 얼마나 좋을까?’라며 넋두리를 할 것이다.

부모님이 떠나시면 하늘이 무너진 것 같다고 해서 ‘천붕(天崩)’이라고 했는데 오늘따라 하늘에 구멍이 뚫렸는지 거세게 비가 내린다.

딸아이가 잘 위로해주고 와야 할 텐데.

태어나서 처음으로 가는 문상이라 떨리기도 하고 무섭기도 할 것이다.




대학 2학년을 마친 겨울방학 때 갑작스럽게 아버지께서 떠나셨다.

그때 아버지 연세가 쉰셋이셨다.

스물두 살 때 아버지를 여의었으니까 일찍 여의었다고 생각했는데 내 동생들은 스물한 살, 열여덟 살 때 아버지를 잃은 것이었다.

동생들이 느꼈을 충격은 나보다 훨씬 더했을 것이다.

솔직히 나도 굉장히 두려웠다.

아버지를 잃은 슬픔도 컸지만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하나?

대학 등록금은 어떻게 하지?’ 같은 생각들이 내 머릿속을 꽉 메웠다.

그래도 그 시절의 나는 나름대로 신앙심이 뜨거웠을 때였다.

집을 떠나 서울에서 지내면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났고 학교의 기독학생 동아리와 교회에서 여러 선배들로부터 많은 도움을 받고 있었다.

성인이 되었고 내 인생에 대한 밑그림이 조금은 그려질 때였다.

하지만 아버지의 죽음은 내가 아직 우리 가족들을 건사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존재라는 것을 여실히 보여주었다.




출가한 두 누나는 제쳐두고서라도 해병대에 갓 입대한 한 살 밑의 남동생과 고등학교 1학년을 마친 여동생, 결혼을 앞둔 막내 누나, 쉰한 살의 어머니.

온 식구가 힘을 모아도 감당하기에는 너무 벅찬 가정이었다.

휴학계를 내고 고향에서 1년을 지내는 동안 새벽에는 신문배달을 하고, 낮에는 도서관을 들락거리든지 노가다 현장에서 시멘트와 벽돌을 나르고, 밤에는 과외선생으로 변신을 했었다.

가장이 되었으니까 집안을 책임지겠다는 당찬 생각을 꿈꾸었다.

하지만 아직 내 앞가림도 할 수 없는 스물두 살 앳된 청년이었을 뿐이다.

가끔 나를 둘러싼 환경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하나님이 살아 계시다고 믿었는데, 나를 사랑하시고 보호하신다고 믿었는데, 이상하게도 나에게 너무 가혹하게 대하신다고 여겨졌다.

그래도 살아가다 보면 살아지는지 아버지 없는 열한 달의 시간을 보내고 그해에도 어김없이 성탄절을 맞이하였다.




성탄절 아침에 집안 분위기를 좀 바꿔보려고 어머니께 성탄선물을 드렸다.

하지만 어머니는 전혀 반기지를 않고 시무룩하게 앉아만 계셨다.

갑자기 모든 게 싫어졌다.

그 자리에서, 그 집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오토바이를 타고 무작정 달렸다.

그런데 30분을 달리니 더 이상 달릴 수가 없었다.

내 고향 제주도는 그렇게 작은 섬이었다.

감옥 같았다.

집도, 고향도, 내 인생도.

그 안에 갇힌 것만 같았다.

나중에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씩 조금씩 알게 되었다.

감옥 같은 그 모든 환경들이 사실은, 하나님의 품 안이었다는 것을.

내가 안간힘을 쓰더라도 벗어날 수 없는 너무나 넓은 하나님의 품이었다.

그 해가 지난 후, 내 청춘의 신앙고백이 생겼다.

그 고백을 가지고 근 1년 동안 교회 대학부 주보에 칼럼으로 썼었다.

“나의 가는 길을 오직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정금같이 나오리라.

(욥기 23:10 개역한글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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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옥> - 이정하


그대여, 아주 가끔은

당신에게서 벗어나고 싶었던 때가 있었습니다.

당신이 쳐둔 철망, 그 좁은 곳을 나와

마음껏 걸어가 보고 싶은 때가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이젠 알겠습니다.

죽는 순간까지 탈옥(脫獄)할 수 없다는 것을.


당신의 감시가 무서워서가 아니라

당신 밖에서 살아갈 자신이 없음을.


그것이 평생 내가 짊어지고 가야 하는 길임을.

나 스스로 종신형을 선고받아

당신의 무기수(無期囚)로 살아가는 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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