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바이러스가 우리 사회를 두려움으로 가득 채우고 있던 2020년 5월이었다.
옴짝달싹하지 못하고 있던 나에게 뭔가 탈출구가 필요했다.
이전처럼 산에 올라가서 바람을 쐴 수도 없었고 산책길을 맘 놓고 걸어 다닐 수도 없었으며 사람들을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기는 더더욱 어려웠다.
아침에 눈을 뜨면 그날 하루도 손해 보는 날이 되는 것 같았다.
이렇게만 살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물밀듯 올라왔다.
단체 카톡방에는 어디서 주워들은 소식인지 모를 황당한 소식들을 퍼 나르는 이들이 있었다.
코로나 전염병 시대가 금방 끝난다는 얘기, 이 바이러스를 어디서 어떤 기관이 조종하고 있다는 얘기 같은 것들이었다.
제발 허무맹랑한 글을 올리지 말라고 타박을 주기도 했다.
하지만 그런 글들을 퍼 나르는 이들도 요지부동이었다.
그들에게 객관적인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인문학적인 사고를 해야 한다고 한창 목소리를 높였다.
도무지 말귀를 못 알아듣는 이들과 씨름할 게 아니라 나 스스로 실천하자는 마음이 들었다.
그래서 시작한 게 글쓰기였다.
물론 그 이전에도 글을 끄적이기는 했었다.
하지만 제대로 틀을 갖추고 쓰기로 했다.
내가 글을 쓰는 것으로 먹고사는 사람이 아니기에 크게 욕심부리지 않기로 했다.
내 성격은 의욕이 앞서서 초반에 너무 무리했다가는 중간에 포기하기에 딱 좋은 성격이다.
장거리 달리기를 하듯이 꾸준히 할 수 있도록 장치를 마련했다.
하루에 A4 한 장 분량이 나에게 딱 알맞았다.
글의 내용은 그날그날 떠오르는 주제를 가지고 쓰기로 했다.
그렇다고 해서 어디에 가서 뭘 먹었다느니 어디 구경갔더니 좋았다느니 같은 시시콜콜한 이야기는 피하기로 했다.
살아오면서 내가 배우고 경험한 것에다가 10년 넘게 이어온 독서운동에서 받은 영감을 바탕으로 해서 삶에 울림이 있는 글, 생명과 사랑과 소망의 글을 쓰기로 했다.
글쓰기를 시작해서 100일 가까이 되었을 때 브런치 작가를 지원했고 허락을 받아 매일 한 편의 글을 브런치에 올리고 있다.
때로는 좀 게으르게 글을 올리는 날도 있지만 어쨌든 아직까지는 하루 한 편의 글을 올리는 데 성공하고 있다.
요즘 누군가에게 나를 소개하면서 하루 한 장의 글을 쓰고 있다고 한다.
그 말을 듣는 사람들의 반응은 다양하다.
어떤 사람들은 매일 숙제하듯이 그렇게 무리하지 말라고 한다.
자신을 너무 혹독하게 몰아가면 탈진할 수 있다며 염려를 해 준다.
내 글을 읽어보고 나서 빨리 책을 내라고 하는 사람들도 있다.
이런저런 말을 듣고 있지만 나는 크게 흔들리지 않고 있다.
어떤 사람들은 내가 왜 글을 쓰려고 하는지 궁금할 것이다.
그런 사람들에게 몽테뉴의 <수상록>에 나와 있는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다.
몽테뉴도 자신이 왜 글을 쓰는지 깊이 생각했었던 인물이다.
그의 글이 내 마음을 잘 대변한다.
“나는 도시의 네거리나 예배당 속이나 광장 한복판에 동상을 하나 세우려고 글을 쓰는 것이 아니다.
어느 서재의 구석에 앉아서 내 작품을 읽는 사람들에게 기쁨을 주기 위함이다.
사람들이 내 책의 종이로 버터를 싸는 일은 없어야 한다.
설령 아무도 내 글을 읽어주는 사람이 없다고 하더라도 내가 글을 쓰면서 유쾌한 사색을 하는 것은 시간 낭비가 아니다.
내 모습을 내 글 속에 집어넣었다가 다시 거기서 나를 뽑아내려고 여러 번 손질하다 보니, 차츰 ‘나’라고 하는 원형이 만들어져갔다.
처음에는 남에게 잘 보이려고 나 자신을 묘사했는데 결국은 내 본모습보다 더 뚜렷하게 나를 그려볼 수 있었다.
내가 내 작품을 만들었는지 내 작품이 나를 만들었는지 모를 정도로 작품은 나와 한몸이 되었고 내 생명의 일부가 되었다.
이처럼 내가 심혈을 기울여서 나 자신을 살펴본 것들을 다른 사람들에게 알려주는 것이 시간 낭비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