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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은석 Sep 13. 2020

코스모스처럼 조화로운 세상

새벽 공기가 제법 시원해졌다. 파란 하늘도 자주 보인다. 가을이 성큼 다가왔다. 가을은 그 이름을 발음할 때부터 살랑살랑 산들바람이 불어오는 것처럼 시원하다. 찌뿌둥했던 마음도 깨끗하게 청소가 되고 괜히 폼 좀 잡고 사색을 즐기고 싶은 생각이 든다. 기왕이면 나무그늘 아아래에서 잔디밭이라도 있으면 더 좋을 것 같다. 그 옆에는 코스모스들이 한들한들 거리는 풍경이면 금상첨화이다. 파란 가을 하늘과 잘 어울리는 꽃, 길가에 흐드러지게 피어도 전혀 어지럽지 않은 꽃, 코스모스는 어디에 피더라도 그 곳의 배경과 분위기를 잘 잡아주는 꽃이다. 이름부터가 코스모스(Cosmos, 조화)여서 그런지 빨강, 분홍, 보라, 하양, 노랑으로 피어나는 이 꽃들은 가을의 길가를 수놓으며 조화로운 세상을 만들어준다.     


코스모스는 그 꽃잎이 모두 8장으로 이루어져 있다. 물론 간혹 6장이나 7장짜리도 있지만  8장이 대세이다. 그 8장의 꽃잎 한 장 한 장이 한 치의 흐트러짐도 없이 자기의 자리를 지키면서 바로 옆에 있는 꽃잎과 끝을 맞대어 서로 연결되어 있다. 그리고 8장의 꽃잎이 마치 기지개를 켜듯이 온몸을 쫙 펴서 전체가 완전한 동그란 원을 그린다. 그 모습이 너무나 아름다워서 꽃의 이름을 ‘조화(調和)’라는 뜻의 ‘코스모스’(Cosmos)로 부르게 된 것 같다. 그런데 만약 코스모스 8장의 꽃잎 중에서 한 장이라도 떼어내면 그 조화로움은 온 데 간 데 없이 사라지고 만다. 꽃잎 한 장이라도 시들어서 쫙 펴지지 않으면 전체가 일그러지면서 보기 흉해진다. 조화로운 상태를 유지하려면 사소한 것 하나라도 자기 자리를 잘 지켜야 한다.     


조화는 틀에 짜 맞춘 규격을 지키는 것이 아니다. 코스모스 꽃잎은 그 하나하나의 크기와 모양이 다 제각각이다. 똑같은 것이 없다. 그처럼 사람이 사는 세상에서도 똑같은 모습을 강요할 수는 없다. 그것은 기계에서나 가능한 일이다. 사람 사는 세상이 조화롭다는 것은 서로 다른 사람들이 각자의 자리를 지킨다는 의미이다.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고, 서로를 받아주고, 서로에게 피해를 끼치지 않는다면 그 사회는 전체적으로 볼 때 조화로운 사회이다. 아버지는 아버지의 자리를 지키고, 어머니는 어머니의 자리를 지키고, 자녀들은 자녀들의 자리를 지키는 것이 조화로운 가정이다. 자녀들이 아버지나 어머니의 자리에 있는 모습을 보고 조화롭다거나 아름답다고 하지는 않는다. 그 가정은 이미 조화가 깨진 가정이기 때문이다.     


조화를 계속 유지하기 위해서는 자기 자리를 지키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그 자리에서 맡겨진 일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 코스모스 꽃잎들이 힘껏 자신의 몸을 펴는 것처럼 내가 해야 할 일에는 힘을 다해야 한다. 조선의 제도적인 기초를 닦은 정도전은 <조선경국전>이라는 법률서를 작성하였다. 임금들도 보고 신하들도 보게 될 책이었다. 그 책에서 정도전은 춘추전국시대의 문집인 관자(管子)의 글귀를 가져와서 ‘왕은 백성을 하늘로 삼으며 백성은 먹는 것을 하늘로 삼는다.’고 했다. 왕은 백성을 돌보는 것에 최선을 다해야 하고 백성들은 힘을 다해서 생업에 종사해야 한다는 말이다. 그런 나라가 조화로운 나라이다. 우리나라가 그런 나라가 되었으면 좋겠다. 일단 나부터 이번 가을에는 코스모스처럼 나의 자리를 지키고 나에게 맡겨진 일에 최선을 다하며 살아야겠다. 그래서 조화로운 세상을 만드는 데 일조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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