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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은석 Sep 15. 2020

기준(基準)이 되는 사람

음악회에 가보면 아직 지휘자가 등장하기 전에 오케스트라단이 먼저 자리를 잡는다. 그리고 제 각기 자신의 악기를 집어 들면 어디선가 ‘삐~’하는 목관악기의 소리가 난다. 그러면 그 소리에 맞춰서 모든 오케스트라단이 동시에 악기를 조율한다. 악기마다 미묘하게 음이 떨어지거나 높아져 있어서 서로 조율하느라 산만하고 시끄러운 상황인데 그 목관악기의 소리는 높고 청아하여서 소음 중에도 유독 뚜렷하게 들린다. 그렇게 서로 다른 악기들을 조율하는 기준 음을 제시해 주는 그 목관악기가 바로 ‘오보에(Oboe)’이다. 프랑스어로 오보에(Hautbois)는 ‘높다’는 뜻의 ‘오(haut)’와 ‘나무’라는 뜻의 ‘부아(bois)’라는 단어가 합쳐진 말이다. 그러니까 이 악기는 처음 탄생될 때부터 높은 음을 내게끔 만들어진 악기이다.     


오보에는 다른 악기들보다 훨씬 높은 음을 발산하기 때문에 여러 악기들과 같이 어우러질 때에도 분명하게 그 소리를 들을 수 있다. 사실 오케스트라단이 모여서 각자 자신의 악기를 조율하는 상황은 매우 무질서할 수 있다. 악기마다 저마다의 음역과 음색이 있어서 이쪽에서 ‘쟁쟁’ 거리고 저쪽에서 ‘깽깽’ 거린다면 시끄러워서 조율하는 데 집중할 수가 없다. 막장 귀를 가진 사람이야 대충 조율해도 그런가보다 하겠지만 음악가들은 소리에 대해서 민감하기에 조율할 때 다른 소리 때문에 방해를 받는다면 굉장히 신경이 날카로울 수 있다. 바로 그때 누구에게나 선명하게 들리는 소리가 있다면 그 음을 기준으로 삼아서 각자의 악기를 조율할 수가 있다. 그 기준이 되는 음을 제시해주는 악기가 바로 오보에이다.     


오보에가 기준을 잡아주기에 영화 <미션(Mission)>에서 가브리엘 선교사가 원주민 과라니족을 만나는 장면에 이 오보에 연주곡을 넣었는지도 모르겠다. 그 곡의 원 제목은 영화 음악의 거장인 엔니오 모리꼬네가 작곡한 ‘가브리엘의 오보에’이다. 그런데 곡이 너무나 아름다워서 후에 키아 페르아르가 이탈리아어로 가사를 붙이고 팝페라 가수인 사라 브라이트만이 불러 더욱 유명해졌다. 우리에게도 너무나 익숙한 ‘넬라 판타지아(Nella Fantasia, 환상 속에서)’이다. 가브리엘 선교사는 전직 노예사냥꾼이었고 자신의 동생을 죽인 살인자이다. 과거의 죄 때문에 인생이 파탄 나서 괴로워하던 가브리엘에게 과거를 끊고 새로운 미래로 나아가게 했던 때가 있는데 바로 이 오보에를 연주했던 때이다. 그 시간이 그의 인생을 나누는 기준점이었다.     


기준은 우리의 위치를 구분하는 선이 된다. 비록 땅에 막대기로 선을 그었을 뿐이더라도 그 선을 기준으로 왼쪽과 오른쪽이 구분된다. 그런데 이렇게 기준을 세워서 거기에 벽을 만들어버리는 사람들이 있다. 영화에서 원주민들이 가브리엘의 오보에를 빼앗아 망가뜨리는 것처럼 기준을 가지고 단절하는 데 사용하는 사람들이다. 마음 아픈 일이다. 하지만 어떤 사람들은 기준을 세우고 왼쪽과 오른쪽을 끌어당기기도 한다. 그들에게 기준은 서로를 화합시키는 연결선이 되는 것이다. 오보에를 망가뜨린 원주민들이 나중에 그 오보에를 고친 후에 가브리엘에게 다시 건네준다. 그때에 비로소 가브리엘은 잃어버렸던 웃음을 되찾고 새로운 삶으로 나아가게 된다. 그리고 원주민들도 오보에를 통해 또 다른 세상을 만나게 된다. 오보에가 서로를 연결해 주는 기준이 된 것이다. 아! 오보에처럼 사람과 사람을 연결하는 기준이 되고 싶다.


<가브리엘의 오보에> 유튜브 링크

https://youtu.be/V-m5u0OFF_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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