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 벅찬 인생

by 박은석


지난 100년 동안 미국 흑인사회에 가장 많은 영향력을 끼친 사람을 꼽으라면 어떤 인물들이 언급될까?

흑인 첫 대통령이었던 버락 오바마, 전 세계 수십억 사람들에게 감동적인 방송을 이어간 오프라 윈프리,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라는 연설로 유명한 마틴 루터 킹, 흑인에 대한 차별에 강력하게 반발했던 말콤 X 등이 언급될 것이다.

문학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인 토니 모리슨을 빼놓을 수 없을 것이다.

이들도 모두 대단했지만 20세기 최고의 영향력을 끼친 흑인으로 많은 사람들이 마야 안젤루(Maya Angelou)를 꼽는다.

그녀는 시인이자 소설가였으며 영화배우이자 가수였다.

무용가이기도 했고 힙합계의 대모였으며 인권운동가이기도 했다.

마야 안젤루가 이런 사람이라고 딱 잘라서 한마디로 말할 수가 없다.

너무나 다양한 직업을 가졌던 것은 그만큼 그녀의 삶에 굴곡진 부분이 많았기 때문이다.




1928년에 태어난 마야 안젤루의 인생은 파란만장하다는 말로도 다 표현하기가 어렵다.

세 살 때 부모님의 이혼으로 할머니집에 보내졌고 4년 뒤인 일곱 살에야 어머니에게 돌아갈 수 있었다.

하지만 그 어린 나이에 어머니의 남자친구에게 성폭행을 당하였다.

너무 무서워서 자신이 당한 일을 사람들에게 말하였는데 삼촌과 이웃사람들이 몰려가서 그 남자를 살해해버렸다.

그 광경을 본 안젤루는 말 한마디에 사람이 죽을 수도 있다는 생각에 5년 동안 실어증을 앓게 되었다.

그 깊은 인생의 어둠 속을 헤맬 때 이웃 아주머니가 몇 권의 책을 건네주었는데 그 책들이 그녀에게 큰 위안이 되었다.

그 후 안젤루는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보면서 삶에 대한 소망을 꿈꾸기 시작하였다.

하지만 안젤루의 시련은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열여섯 살 때 불장난 같은 연애로 아들을 낳았는데 남자친구로부터 버림을 받아 홀로 아이를 키워야 했다.




그녀의 어머니는 성공한 사업가였지만 안젤루는 도움을 받지 않고 스스로 아이를 키우려고 했다.

그래서 클럽의 웨이트리스, 싱어 겸 댄서, 트럭운전사, 자동차 정비사 등 온갖 험한 일을 하면서 견뎠다.

그러면서도 그녀는 꿈을 잃지 않았다.

오페라 가수가 되고 싶었고 작가가 되고 싶었고 무용수가 되고 싶었다.

그래서 시간을 내서 노래하고 무용과 연기 연습을 하고 글을 쓰면서 자신의 삶을 끌어올리려고 하였다.

그런 노력의 결과로 조금씩 연기자로, 무용수로, 가수로서의 유명세를 타기 시작하면서 당시 흑인 인권운동의 선두에 서게 되었다.

그녀의 인생은 “당신들 나를 땅에 눕혀 짓밟을 수도 있지만 그래도 나, 먼지처럼 일어나리라”로 시작되는 시 <그래도 나는 일어서리라(Still I rise)>에 고스란히 녹아들어 있다.

그녀는 이 시에서 제아무리 절망스러운 상황일지라도 절대로 포기하지 말고 희망을 가지라고 외치고 있다.




어느 날 입이 험하기로 유명한 힙합 가수 투팍(2pac)이 무대 뒤에서 난동을 피길래 그녀가 “네가 이 무대에 서기까지 얼마나 많은 흑인들이 노예시장의 무대 위에서 팔려갔는지 아니?”라고 말했다고 한다.

그 말을 듣고 야생마같이 날뛰던 투팍이 대성통곡을 했다고 한다.

그녀가 힙합계의 대모가 되는 순간이었다.

그녀의 자서전적 소설인 <새장에 갇힌 새가 왜 노래하는지 나는 아네>를 보면 그녀가 얼마나 많은 차별을 견뎌냈는지 알 수 있다.

결국 그녀는 이겨냈다.

그리고 2014년에 생을 마감할 때까지 전 세계 수많은 사람들의 가슴에 인생의 소중함과 사랑과 평화의 가치를 깊이 새겨주었다.

마야 안젤루의 삶은 그녀가 즐겨 했던 한마디의 말로 요약할 수 있다.

“인생은 숨을 쉰 횟수가 얼마나 많은가로 평가되는 것이 아니라, 숨 막힐 정도로 가슴 벅찬 순간들을 얼마나 많이 가졌는가로 평가된다

(Life is not measured by the number of breaths we take, but by the moments that take our breath aw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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