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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은석 Jun 21. 2022

<삼국지>를 보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고민하게 된다


우리가 흔히 알고 이는 삼국지는 사실 <삼국지연의>라는 소설이다.

정확한 역사를 기록한 작품이 아니라 역사를 바탕으로 해서 있을 법한 이야기를 엮은 작품이다.

지은이는 나관중이란 사람이고.

소설이란 게 있음 직한 이야기를 꾸민 허구이니까 소설 <삼국지>에서도 실제 역사와는 다른 장면들이 나타난다.

그러더라도 소설 삼국지를 읽으면 중국 역사에 대해서 상당 부분 이해할 수 있다.

더군다나 소설 삼국지의 사건들이 고사성어로 굳어져서 우리에게 많은 교훈을 주기도 한다.

유비, 관우, 장비가 형제의 우애를 다졌다는 도원결의(桃園結義), 유비가 제갈공명을 책사로 모시기 위해서 그의 초가집에 3번이나 찾아갔다는 삼고초려(三顧草廬), 제갈량이 조조의 군대와 싸우기 위해 떠나면서 선포한 출사표(出師表), 명령을 어기고 공격을 했다가 패배한 마속을 어쩔 수 없이 참수해야만 했던 읍참마속(泣斬馬謖) 등이 대표적이다.




그런데 삼국지에서 유래된 고사성어 중에서 사람 이름으로만 굳어진 말도 있다.

바로 범강장달(范疆張達)이다.

범강과 장달은 유비의 촉나라 장수들이었다.

촉나라에 장수들 중 대표적인 인물은 관우, 장비와 상산의 조자룡 등이다.

그들과 거의 비슷한 용맹을 다투는 군사들도 있었지만 어쨌든 관우와 장비가 유비와 형 제지의 맹세를 했고 나중에 조자룡이 막내동생 뻘로 함께 했다.

그리고 이들 수하에 여러 장수들이 있었는데 범강과 장달은 장비의 부하였다.

위촉오 3개 나라 중에서 제일 늦게 출발한 유비의 촉나라가 어느덧 위나라와 촉나라도 건들지 못할 정도로 성장했다.

하지만 산이 높으면 골짜기가 가파르듯이 촉나라는 삽시간에 약해졌다.

관우가 어처구니없게도 위나라의 모략에 걸려들어 목숨을 잃었기 때문이다.

형제를 잃은 유비와 장비는 제정신이 아니었다.

그때는 나라의 안정보다 관우에 대한 복수가 더 중요했다.




지금은 오나라와 전쟁을 할 때가 아니라는 제갈공명의 말도 통하지 않았다.

유비와 장비는 각각 군사를 이끌고 오나라를 양 방면에서 공격하려고 했다.

제갈공명도 어쩔 수 없이 주군인 유비의 뜻에 따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장비가 걱정되었기에 장비에게 2가지 부탁을 하였다.

아니 어쩌면 군령이었다.

반드시 지키라고 했다.

하나는 술을 마시지 말라는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부하들을 때리지 말라는 것이었다.

술을 좋아하는 장비는 술만 마시면 부하들을 때리는 습관이 있었던 것 같다.

자기 생각에 부하들이 자기 맘대로 움직여주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하기는 부하들이 장비와 비슷한 수준이라면 장비가 자기 자리를 잃었을 것이다.

어쨌든 장비는 관우의 복수를 하기 위해서 깃발과 군장들을 빨리 만들라고 했다.

하지만 시간이 빠듯하고 물자가 부족했기에 그 직무를 담당했던 범강과 장달은 시간 내에 완성하지 못했다.




자기가 내린 명령이 제대로 수행되지 못하자 장비는 굉장히 화가 났다.

거기다가 벌써 술도 엄청 마신 상태였다.

장비는 범강과 장달을 불러서 그들을 매우 심하게 때렸고, 다음날까지 명령을 수행하지 못하면 죽이겠다고 했다.

아무리 해도 완성하지 못할 일이었기에 범강과 장달은 장비의 손에 죽느니보다 차라리 자신들이 장비를 죽이자고 했다.

그래서 그날 밤에 잠들어 있는 장비를 죽이고 그 목을 들고 오나라의 군주 손권에게 투항하였다.

삼국지를 통틀어 제일 어처구니없는 죽음이었다.

손권은 장비의 목을 들고 온 범강과 장달을 다시 촉나라로 돌려보냈다.

그 결과 범강과 장달은 장비의 아들 장포에게 처참하게 죽임을 당했다.

그리고 후세 사람들은 범강과 장달의 이름을 배신자의 대명사로 부른다.

범강과 장달은 살고 싶었지만 목숨도 잃었고 명예도 잃었다.

과연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고민하게 만드는 장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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