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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은석 Jun 24. 2022

뜻밖에 기존의 것이 무너지고 새것이 나온다


내가 아는 어느 선생님이 우쿨렐레라는 악기를 자기만의 방식으로 만들었다.

3줄짜리 우쿨렐레이다.

우쿨렐레는 4줄짜리 악기라는 것이 정설인데 그 선생님은 네 줄보다는 세 줄이 배우기도 쉽고 연주하기도 쉽다며 그렇게 만드셨다.

물론 줄 하나 차이로 화음은 조금 약해질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자신의 지식과 경험을 활용하여 기존의 것을 변형시키고 새로운 것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사실에 나는 적지 않게 놀랐다.

기타는 기본이 6줄인데 그것을 변형시켜서 7줄짜리로 만들 수 있고 10줄짜리로 만들 수도 있다.

내 친구 중 하나가 열두 줄 기타를 가지고 왔을 때 신기하듯이 쳐다보았던 기억이 새롭다.

하기는 처음 악기가 탄생했을 때 사람들은 한 줄짜리로부터 시작했다.

그러다가 여러 줄짜리 악기를 만들었고 그중에서도 가장 화음이 좋은 한 가지 악기가 탄생했다.

그리고 그다음에는 서서히 한 줄씩 늘려갔을 것이다.     




치밀하게 계산하고 계획해서 만들어내는 것들도 있다.

하지만 우리가 사는 세상의 상당수의 물건이나 제도들은 우연한 기회에 얻어지기도 한다.

의도하지 않았는데 결과물이 나오고 실망스러워서 쓰레기통에 버리려고 했는데 한번 사용해보더니만 가장 아끼는 것이 된다.

3M에서 만든 포스트잇은 대표적인 실패작 접착제였지만 세계의 모든 사무실과 사무관리 직원들의 생활에 큰 변화를 가져왔다.

우유에 넣어서 아삭아삭 씹어 먹는 시리얼도 제대로 신경 쓰지 못해서 굳어버린 밀가루 반죽을 어떻게든 잘게 부숴서라도 쓰려고 하다가 탄생한 것이다.

시리얼 덕분에 유치원에 아이들도 스스로 아침식사를 해결할 수 있게 되었다.

아침식사 준비에서 자유로워진 여성들에게는 더없이 반가운 발명품이 되었다.

‘모네’의 <해돋이, 인상>을 본 사람들은 “그림이 되게 인상적이네.”라고 비아냥거렸는데 그 작품이 인상파의 길을 열어주었다.




기존의 질서를 바탕으로 해서 안정적으로 발전한 것들도 있다.

그러나 기존의 질서에서 완전히 탈피하여 완전히 새로운 모습으로 선보인 것들도 있다.

나에게는 이상의 <오감도>가 그렇게 느껴졌다.

‘제 1의 아해가 무섭다고 그리오.

제 2의 아해도 무섭다고 그리오.

제 3의 아해도 무섭다고 그리오.’ 이렇게 열세 명의 아이들이 언급하는데 ‘이게 무슨 시라는 것인가?’ 투덜거리면서 읽었었다.

하지만 소리를 내서 읽으면 느낌이 다르다.

운율이 생기고 노래 같고 시의 분위기에 빨려든다.

그래! 시는 눈으로 읽은 게 아니라 입으로 읊는 것이다! 그것을 이상의 <오감도>에서 발견할 수 있었다.

기존의 질서는, 글자는 눈으로 읽고 이해하면 된다는 것인데 이상의 <오감도>는 소리 내서 읽으면 귀에 무언가 들린다는 사실을 알려주었다.

초등학생 수준의 유치한 글처럼 보이는데 그 시는 기존의 틀을 와르르 무너뜨린 위대한 작품이었다.




일제강점기 때 동경 한복판에서 일본 왕을 암살하려던 젊은이가 있었다.

제정신이 아니었다.

온전한 정신으로는 차마 그런 생각을 하지 못한다.

하지만 그는 자기 스스로 자신을 미친놈 취급했다.

그리고 자신의 마음을 담아 <개새끼>라는 시를 썼다.


‘나는 개새끼로소이다.

하늘을 보고 짖는, 

달을 보고 짖는,

보잘것없는, 

나는 개새끼로소이다.

높은 양반의 가랑이에서 뜨거운 것이 쏟아져, 

나도 그의 다리에다 뜨거운 줄기를 뿜어대는, 

나는 개새끼로소이다’ 


내 앞에서 오줌을 누는 양반이 있다면 나도 그 발에다 오줌을 누겠다고 선포한 것이다.

개새끼처럼 그렇게 하겠다는 것이다.

일본이 조선을 욕보였으니 자신도 일본을 욕보이겠다는 마음을 시에 담은 것이다.

평상시 같았으면 이런 인물이나 이런 시가 안 나왔을 것이다.

뜻밖의 시대에, 계획하지 않았던 때, 기존의 질서를 깨뜨리고 이런 인물과 이런 작품이 나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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