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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은석 Jun 22. 2022

밥과 같은 친구, 약과 같은 친구, 병과 같은 친구


멀리 가려면 함께 가라는 말이 있다.

아프리카 어느 부족의 이야기라고 하는데 그래도 그렇지 무조건 함께 가면 안 될 것 같다.

마음이 맞는 사람과 함께 가는 길이면 좋다.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간다면 금상첨화이고.

하지만 어색한 사람과 함께 간다면 정말 싫을 것이다.

일 때문에 직장 상사와 함께 가는 길은 나 말고 다른 사람이 있으면 그 사람을 보내고 싶은 마음이 들 때도 있다.

불편한 관계인 사람과 함께 가는 길은 지옥을 경험하는 시간이 될 수도 있다.

누구와 함께 가느냐가 중요할 수밖에 없는 이유이다.

그런 점에서 오래된 친구만큼 좋은 사람은 없는 것 같다.

친구라면 일단 편하다.

내가 무슨 말을 하든지 들어줄 테고 무슨 행동을 하든지 받아줄 것이다.

오래된 친구라면 굳이 말하지 않아도 내 취향이나 성격을 헤아릴 줄 알기에 적당히 말하고 적당히 침묵할 수도 있다.

친구만큼 좋은 사람도 없을 것이다.




하지만 친구라고 해서 다 좋은 관계이지는 않을 것이다.

고등학생 적 내 친구 하나는 나와 함께 동아리 활동도 했다.

성적도 나와 앞서거니 뒤서거니 했다.

대학도 같은 학교로 갔다.

학과가 달라서 교정에서 스쳐가듯 만나곤 했다.

언젠가 그 친구가 돈을 좀 빌려달라고 했다.

당시 대학생 한 달 용돈이 10만 원 정도였고 학교 근처 자취방도 한 달에 그 정도에서 조금 웃돌았다.

친구가 난처한 상황이라는데 그냥 넘어갈 수 없었다.

내 한 달 생활비의 절반 정도를 빌려준 것 같다.

30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못 받았다.

돈 빌린 놈은 잊어버렸을 수도 있지만 돈 빌려준 놈은 절대 잊어버리지 않는다.

그러고 보니 그게 처음이 아니라 두 번째였다.

나는 좋은 친구가 되려고 두 번이나 호구가 되었다.

그래도 누가 졸업앨범이라도 꺼내서 이 사람이 누구냐고 묻는다면 친구라고 대답할 것이다.

달리 대답할 말이 없다.

우리는 친구가 맞다.




친구에도 종류가 있다고 한다.

밥과 같은 친구, 약과 같은 친구, 병과 같은 친구이다.

밥과 같은 친구는 매일 만나다시피 하는 친구이다.

아침에 밥을 먹고 점심때 밥을 먹고 저녁때 또 밥을 먹어도 질리지 않듯이 이런 친구는 만나고 만나도 계속 반갑다.

아예 나의 분신처럼 함께 있어도 좋은 친구이다.

약과 같은 친구는 가끔씩 만나면 좋은 친구이다.

그간의 이야기를 나누며 서로에게 도움을 준다.

하지만 약이 지나치면 몸을 상하게 하듯이 약과 같은 친구는 계속 함께 있기에는 껄끄럽다.

좋은 친구이면서도 부담스러운 친구이다.

그런가 하면 병과 같은 친구는 정말 피하고 싶은 친구이다.

만나고 돌아설 때마다 뭔가 손해를 본 기분이 든다.

같이 밥을 먹고 차를 마시고 한참 이야기를 나눴는데 뒤끝이 안 좋다.

분명히 함께 웃고 즐겼는데 헤어질 때면 기분이 상한다.

그러면서도 단칼에 관계를 끊을 수 없다.

친구니까 그렇다.     




나는 어떤 친구일까 생각해 본다.

누군가에게는 약과 같은 친구일 것이다.

내가 알고 있는 온갖 정보들을 다 얻어가면서 그는 나를 약과 같은 친구라고 할 것이다.

누군가에는 병과 같은 친구일 것이다.

나에게 잔소리를 들으면서 자존심이 상한 친구는 나를 가까이하기 싫은 병과 같은 친구라고 할 것이다.

모든 사람에게 좋은 친구가 될 수는 없다.

내 능력의 한계이다.

하지만 기왕에 친구가 되었으니까 약과 같은 친구나 병과 같은 친구보다는 밥과 같은 친구가 되도록 노력해야겠다.

나를 만나면 흰쌀밥을 받은 것처럼 기분이 좋아지도록 할 수는 없을까? 

매일 먹어도 질리지 않고, 

먹고 또 먹어도 군침이 도는 밥처럼, 

나를 만나고 만나도 질리지 않고, 

나를 만날 때마다 기분이 좋아지는,

그런 관계를 만들 수는 없을까?

세상 모든 사람이 저마다 밥과 같은 친구가 하나쯤 있으면 배고플 일도 없고 지루할 일도 없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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