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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은석 Jun 20. 2022

청계산을 보며 드는 생각 - ‘산은 참 위대하다’


아내와 같이 백운호수 근처의 카페에서 커피를 한 잔 마셨다.

통유리가 한쪽 벽을 두르고 있었기에 멀리 있는 산이 뚜렷하게 보였다.

봉우리가 여러 개 연결되어 있었는데 모두 다 청계산 자락이다.

한동안 일주일에 한 번 청계산을 올랐었다.

집에서 가까운 산이었기에 여유 시간이 많지 않은 나로서는 등산의 맛을 느끼기에 딱 알맞은 산이었다.

지하철 청계산입구역에서부터 시작하는 등산이라서 출발지점은 언제나 원터골이었다.

1시간 조금 넘게 부지런히 올라 땀이 삐질삐질 흐를 때쯤이면 매봉에 다다른다.

매봉 바로 옆에 우람하게 튀어나온 바위가 있는데 꼭 매를 닮았다고 해서 매바위라 부른다.

매봉은 해발 고도 582.5미터라서 사실 그리 높지는 않다.

물론 조금 더 가서 망경대에도 오르고 싶지만 입산 통제구역이니 그 둘레만 걷다가 내려온다.

산에 가면 정상을 밟아야 한다는 사람들에게는 아쉬움이 남는 곳이다.




매봉에서 바라보는 전망은 시원하다.

왼쪽으로부터 경기도 과천시, 서울 서초구와 송파구 땅이 파노라마처럼 지나간다.

그리고 뒤쪽으로는 내가 살고 있는 성남시와 의왕시가 떡하니 버티고 있다.

안전하게 원터골에서 출발해서 원터골로 내려오는 코스만 고집했었는데 어느 날 갑자기 방랑끼가 발동했었다.

난생처음 걸어보는 코스를 타기로 한 것이다.

어디로든 내려가면 대중교통을 이용하여 집에 갈 수는 있을 테니까 모험을 걸어본 것이다.

덕분에 보통 두세 시간 걸렸던 청계산 등산이 그날은 대여섯 시간은 걸렸다.

물론 하산 지점에서도 집에 가는 버스를 잡아타느라 고생은 좀 많이 했다.

하지만 그날의 경험을 통해서 내가 깨달은 점이 있다.

청계산의 시작을 어디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고 청계산이 행정구역상 어디에 속했다고 딱히 말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쪽에서 보면 앞산이지만 저쪽에서 보면 뒷산인 격이다.




그런 이야깃거리들이 담겨 있는 청계산을 바라보면서 커피를 한잔 마시고 있자니 다시 산에 오르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저게 다 청계산이야? 다른 이름의 산들도 있는 거 아냐?”라고 묻는 아내의 질문에

“저걸 다 모아서 청계산이라고 하고 뾰족뾰족 튀어나온 봉우리가 여러 개 있는 거야.”라고 대답했다.

순간 내가 제대로 설명을 한 것인가 살짝 헷갈리기도 했지만 그게 맞는 말이라고 믿기로 했다.

아내는 청계산이 양재 쪽에서 올라가는 산이 아니냐고 했다.

맞다고 했다.

청계산은 양재 쪽에서 올라간다.

하지만 길이 그곳만 있는 것이 아니다.

과천에서도 올라갈 수 있고 백운호수가 있는 이쪽 의왕에서도 올라갈 수 있다고 했다.

뿐만 아니라 판교에서도 올라갈 수 있는데 언젠가 나도 길을 헤매서 판교로 내려온 적이 있다고 했다.

산은 청계산이라는 하나의 이름으로 불리지만 그 안에 여러 봉우리가 있고 여러 길이 있다.




이런 말을 하는데 갑자기 매봉에서 만난 여러 사람들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들의 얼굴이 기억났다는 것이 아니다.

이름도 나이도 거주지도 알 수 없지만 매봉에 여러 사람이 올라왔고 거기서 사진을 찍고 내려갔다.

그 이미지가 떠올랐다.

매봉 옆 매바위에서 내가 “야호!”하고 소리 질렀을 때 그 아래에서 “시끄러워!”라고 외쳤던 목소리도 기억났다.

그들은 어디에서 무엇을 하는 사람인지 모르지만 청계산은 그들을 다 반겨 맞았다.

과천 사람, 서울 사람, 성남 사람, 의왕 사람, 그리고 멀리서 온 사람도 있었을 텐데 산은 그 누구도 차별하지 않았다.

산에 있을 때 우리는 모두 산사람이었다.

다들 산에 있다고 했다.

함께 한 장소에 머물러 있었다.

그러나 산에서 내려왔을 때는 산사람이 아니었다.

자기가 어디 어디에 산다고 했다.

각자 사는 곳으로 흩어졌다.

함께 있을 수 없었다.

이것 한 가지만 보더라도 산은 참 위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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