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녀교육에 대한 말이 나올 때마다 맹자의 어머니에 대한 이야기가 언급된다.
아들의 교육을 위해서 집을 세 번 이사했다는 이야기다.
첫 번째 집은 무덤가에 있었다.
그랬더니 맹자가 장례식을 흉내 내면서 놀더라는 것이다.
이래서는 안 되겠다 싶어서 맹자 어머니는 시장통으로 이사를 했다.
두 번째 집이다.
그랬더니 이번에는 맹자가 장사꾼들을 본떠서 놀더라는 것이다.
맹자의 어머니는 아들이 장사꾼이 되는 것을 원치 않았다.
이 녀석이 자기가 사는 동네에 따라서 놀이가 달라지는구나 깨달았다.
그래서 맹자의 어머니는 서당 옆으로 이사를 했다.
세 번째 집이다.
맹자 어머니의 예측이 맞았는지 서당 옆으로 이사를 한 맹자는 서당에서 배우는 학생들을 따라서 글을 읽고 쓰면서 놀더라는 것이다.
맹자의 어머니가 서당 옆으로 이사를 했기 때문에 맹자가 어려서부터 글공부를 했고, 결국 훌륭한 학자가 되었다는 이야기이다.
생각해보니 그동안 어쩌면 이렇게 단순하게 인생을 평가했을까?
자녀 교육을 위해서 이사를 했다는 말에 아무런 토를 달지 않고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뉴스에서 가끔 그런 사람들이 나온다.
자녀 교육을 위해서 이사하는 사람들이 있다.
실제로는 이사하지 않았으면서도 이사한 척하는 사람도 있다.
‘위장전입’이라는 기막힌 방법을 사용하는 사람도 있다.
결과적으로 자녀들의 성적이 나아졌고 좋은 대학에 입학했다고 자랑을 한다.
그런 경험을 살려서 자녀교육은 이렇게 해야 한다며 책을 쓰기도 한다.
그런 사람들에게, 그런 사람들을 따라가는 사람들에게, 그런 사람들을 부러워하는 사람들에게 한 마디 묻고 싶다.
“그래서, 맹자는 어디에 있습니까?”
아무리 눈을 씻고 찾아봐도 맹자가 안 보인다.
맹자의 어머니는 세 번 이사를 해서 맹자를 만들었는데 맹자의 어머니를 따른다는 사람들은 도대체 누구를 만든 것일까?
맹자의 어머니를 좀 달리 생각해보았다.
맹자가 어렸을 때 너무 가난해서 집을 얻기가 어렵지 않았을까?
그래서 웬만한 사람들은 가지 않는 무덤가에 집을 얻어서 살았던 것은 아닐까?
맹자가 무덤가에서 장례식 놀이를 즐겨하는 것을 보고 이사하고 싶었겠지.
그래서 돈을 모으고 모아서 그나마 얻을 수 있는 집이 시장골목의 집이었지 않았을까?
아쉽지만 어쩔 수 있었겠나?
맹자가 허구한 날 장사꾼 놀이를 하는 것을 보고 집을 옮기고 싶었지만 그러기에는 당장은 힘들었을 것이다.
그곳에 자리를 잡고 악착같이 일을 하면서 돈을 모았을 것이다.
이제 어느 정도 여력이 되자 그렇게 원하던 동네로 이사를 가게 된 것 아닐까?
서당이 근처에 있는 조용하고 안정된 지역을 택한 것 아닐까?
이렇게 생각해보니 맹자의 어머니는 자식의 공부 때문에 집을 옮겼다기보다 자신에게 주어진 삶의 여력에 맞춰 집을 옮겼다고 볼 수 있겠다.
그렇다면 맹자는 어떻게 위대한 인물이 되었을까?
서당 옆으로 이사를 해서 열심히 공부했기 때문에 훌륭한 학자가 된 것일까?
그러지는 않을 것이다.
그 시절에도 맹자처럼 공부 많이 한 사람들이 많았을 것이다.
오늘날에도 공부를 많이 한 사람들이 너무나 많다.
공부를 많이 해서 유명한 학자가 될 수는 있지만 훌륭한 학자가 되는 것도 아니고 위대한 스승이 되는 것도 아니다.
맹자가 훌륭하고 위대한 인물이 될 수 있었던 것은 그가 자라난 환경이 분명 영향을 끼쳤을 것이다.
무덤가에서 장례를 치르는 모습을 보면서 맹자는 인생에 죽음이 있다는 사실을 생각했을 것이다.
시장통에서 물건을 사고파는 모습을 보면서 사람 살아가는 세상을 생각했을 것이다.
이렇게 삶과 죽음에 대한 통찰을 바탕으로 하여 그 위에 학문을 쌓았던 것이다.
무덤가에서, 시장통에서의 삶이 맹자를 위대한 학자요 스승이 되게 만든 것인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