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은 선물이요 기적이요 희망이다

by 박은석


얼마 전 어느 밤에 이웃집에서 사춘기 아들이 엄마와 말다툼하는 것을 들었다.

내가 들으려고 해서 들은 것이 아니라 너무 목소리가 커서 나에게 들려졌다.

도대체 무슨 일이었는지는 모르지만 갑자기 아들이 엄마에게 “그러니까 왜 나를 낳았냐고?” 하며 외쳤다.

그 순간 그 아들의 엄마가 찢어지는 듯한 고함을 지르며 울부짖었다.

그 소리를 들은 나의 마음도 뭔가 찢어지는 것 같았다.

부모에게 왜 자기를 낳았느냐고 하는 말처럼 불효막심한 말도 없을 것이다.

그건 부모의 마음을 후벼 파는 말이다.

한 사람이 생명을 얻는 것은 정말 기적과도 같은 일이다.

마음먹고 낳겠다고 해서 낳을 수 있는 게 아니다.

생명은 그렇게 간단하게 얻을 수 있는 게 아니다.

남녀가 결혼해서 같이 산다고 해서 생명이 탄생하는 것도 아니다.

웬만한 일은 노력으로 얻을 수 있지만 생명은 노력으로 얻는 것도 아니다.

생명은 하나님의 선물이다.




생명이 형성되려면 우선적으로 정자와 난자가 만나야 한다.

남성의 경우 일반적으로 한 번에 2억 8천만 개의 정자를 발산한다고 한다.

그 정자들은 오직 한 개의 난자를 향해서 죽을힘을 다해 헤엄을 친다.

그중에서 2억 1천만 개의 정자는 안타깝게도 경주를 시작하자마자 즉시 탈락한다.

살아남은 7천만 개 중에서도 자궁에 입성하는 것은 10만 개 정도밖에 안 된다.

6천9백9십만 개가 또 경쟁에서 떨어져나가는 것이다.

자궁에 입성한 10만의 정자들은 이제 나팔관을 향해서 다시 달린다.

그리고 나팔관에 도착할 때쯤에는 겨우 200개 정도만 간신히 살아남는다.

다시 9만9천8백 개가 탈락하는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그 200개 중에서 하나가 난자하고 수정이 되는 것이다.

최종 경쟁률은 200대 1이다.

가끔 두 개의 정자가 동시에 결승선에 도착하는 경우가 있다.

그러면 쌍둥이가 되는 것이다.

그 경우의 경쟁률은 100대 1이다.




정자와 난자가 수정했다고 해서 곧바로 아기가 “응애”하고 태어나지 않는다.

긴 시간 동안 엄마 뱃속에서 자라야 한다.

이제 겨우 생명의 싹을 틔운 것뿐이다.

엄마 뱃속에 있는 기간 동안에도 생명의 싹이 시들어버리는 경우도 많다.

충분히 싹이 자랐다고 해서 세상으로 쉽게 나오는 것도 아니다.

아무리 의학이 발달했다고 하지만 여전히 가장 많은 생명을 잃는 곳이 산부인과라고도 한다.

그만큼 생명을 얻기가 쉽지 않다는 말일 것이다.

지금 이 순간 이 지구상에서 숨을 쉬며 살아가는 우리 모두는 그런 엄청난 경쟁률을 뚫고 기적과도 같은 순간들을 통과해서 이 세상에 태어난 것이다.

제아무리 어렵다고 하는 명문대학 입시의 경우에도 경쟁률은 불과 수십 대 1 정도이다.

취업시험의 경쟁률이 높다고 하지만 수백 대 1 정도이다.

그런데 우리는 이미 2억8천만 대 1의 경쟁률을 뚫었다.

기적 중의 기적이다.

생명은 기적이다.




그런 놀라운 경쟁률을 뚫고 최종 합격했으니 얼마나 기쁘겠는가?

그래서 사람들은 너나없이 새로운 생명이 태어나면 기뻐하며 즐거워하고 축하해 준다.

총탄이 터지는 전쟁터에서도 생명이 태어나면 사람들은 환호한다.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워지는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생명은 우리에게 소망을 주기 때문이다.

혹시 잊어버렸을지 모르겠지만 우리가 태어날 때도 그랬다.

우리를 둘러싼 사람들이 우리를 보며 기뻐했고 즐거워했다.

누가 봐도 힘들게 살아가는 사람들임에도 결혼하자마자 덜컥 애를 가지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 사람들에게 살기도 힘든데 벌써 애를 가졌냐며 어떻게 키울 거냐고 핀잔주듯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렇게 말하는 사람들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들에게는 희망이 보이지 않는다.

희망은 생명 안에만 깃들어 있다.

살기도 힘든데 왜 아이를 가졌냐면 그들에게는 아이가 희망이기 때문이다.

생명은 희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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