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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은석 Jul 12. 2022

인간이란 존재는 참 알다가도 모를 존재이다


인간이란 참 간사하다.

평상시에는 신사인 척, 숙녀인 척 도도한 모습을 보이다가도 지하철만 타면 먹이를 찾는 하이에나처럼 앉을 자리를 찾아 두리번거린다.

그러다가 저기 한 자리가 나면 재빨리 그 자리를 차지하고 피곤한 척 금세 눈을 감는다.

평상시에는 옷에 뭐라도 묻으면 큰일 난 것처럼 그 얼룩을 빼내려고 난리를 치다가도 산에 올라가면 흙바닥이든 돌 위에든 아무 데나 주저앉는다.

옷 더러워지는 건 신경도 안 쓴다.

아침 출근길에 한참 머리 손질, 옷 손질하며 깔끔을 떨다가도 예비군 옷만 입으면 개 같은 성질이 나온다.

어느 구석에 쪼그려 앉아 꾸벅꾸벅 졸다가 밥 먹을 때는 어슬렁어슬렁 걸어 나온다.

집안을 난장판으로 만들어놓고 나왔어도 남들이 보는 데서는 세상 깔끔한 척한다.

우리가 아는 사람들도 그런다.

새하얀 옷을 입고 있는 그 사람이 속은 시커멀 수 있다.

이처럼 겉 다르고 속 다른 게 인간이다.




인간이란 참 게으르다.

가만히 있으면 계속 가만히 있으려고만 한다.

집에서 자기가 제일 한가한 사람이면서도 제일 바쁜 사람에게 물 한 잔 달라고 한다.

자기는 손이 없나 발이 없나?

괜히 바쁜 척 피곤한 척하는데 그런 사람을 보면 대개 대자로 드러누워 텔레비전 리모컨을 돌리고 있다.

리모컨 돌리는 게 세상에서 제일 힘든 일인 것처럼 여기는 것 같다.

인간이 만든 발명품 중에 리모컨처럼 인간을 게으르게 하는 게 또 있을까?

예전에는 이부자리를 깔아야 잠을 잤다.

이부자리가 있으면 다른 사람이 드나들 수가 없었다.

이부자리를 깔고 개려면 부지런해야 했다.

그런데 인간의 본성은 좀 더 자자, 좀 더 눕자 하는 쪽이다.

결국 게으른 인간은 언제든지 드러누울 수 있도록 안방에는 침대를 들여놓았고 거실에는 소파를 들였다.

이제는 집 현관문만 열면 잠잘 준비가 되어 있다.

이처럼 마음껏 게으르려고 하는 게 인간이다.




인간이란 참 잊어버리기를 잘한다.

자기가 했던 말도 언제 그랬냐고 시치미를 뚝 떼고 자기가 한 행동도 안 했다고 잡아뗀다.

자기도 힘들고 어려웠던 시절이 있었으면서도 힘들고 어렵게 살아가는 사람들을 보면 자기는 다른 세상에 사는 것처럼 생각한다.

고작 100년 전만 하더라도 자동차도 없었고, 휴대폰도 없었고, 냉장고도 없었고, 텔레비전도 없었다.

세탁기도 없었고 양변기도 없었고 인덕션은 물론이거니와 전자레인지와 가스레인지도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때도 인간은 잘 살아갔다.

헌데 지금 다시 그때로 돌아간다면 단 하루도 살 수 없을 것이다.

당장 밥을 어떻게 해 먹어야 하는지부터 고민해야 한다.

야생에서 살아가는 사람을 보면 무슨 특수부대인 것처럼 신기하게 쳐다본다.

신기한 게 아니다.

우리 조상들도 그렇게 살아왔는데 우리가 그 방법을 잊어버린 것이다.

이처럼 너무 잘 잊어버리는 게 인간이다.




참 간사해서 겉 다르고 속 다른 인간이 남에게 잘 보이려고 하다 보니까 패션이 발달하고 유행이 생기고 예술과 문학이 발전하게 되었다.

참 게으른 인간이 어떻게 하면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않고 더 편하게 살 수 있을까 궁리하다 보니까 온갖 문명의 이기들을 발명하게 되었다.

참 잊어버리기를 잘하는 인간이 어떻게든 살아가려고 안간힘을 쓰며 좌충우돌하다 보니까 변하는 환경에 적응하는 새로운 방법들을 알게 되었다.

짐승이나 식물은 조금만 들여다보면 그것들이 어떤 존재인지 알 수 있는데 인간이란 존재는 아무리 연구를 한다고 해도 도저히 알 수가 없다.

전 세계 80억 인간이 다 제각각이다.

간사해서 아무도 믿을 수 없다.

게을러서 도저히 앞날에 대한 희망을 걸 수가 없다.

그런데도 인간이 만물의 영장이라며 지구를 쥐락펴락하는 이유가 있다면 자기가 간사하고 게으르다는 사실을 너무나 잘 잊어버리기 때문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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