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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은석 Jul 16. 2022

한 시대가 가고 한 시대가 온다


생명 있는 모든 것은 탄생과 성장과 소멸의 과정을 겪는다.

사람도 동물도 풀과 꽃도 그 과정을 비껴가지 않는다.

사람들이 모여서 만든 공동체나 국가도 생명체 못지않게 이 과정을 겪는다.

조상 적부터 내려온 기업도, 천년왕국을 구가했던 로마제국도, 인류 역사상 가장 광활한 땅을 차지했던 몽골제국도 사라지고 말았다.

천세 천세를 외쳤던 조선은 천년을 가지도 못했고, 만세 만세를 외쳤던 명나라와 청나라는 만년은커녕 300년도 버티지 못했다.

창업 군주의 뜻을 이어받아 최대한 오래 버티려고 법도 만들고 조직도 개편해봤지만 세월 앞에 장사 없듯이 세월 앞에 제국은 없었다.

남들은 안 되었지만 나는 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던 이들도 많았을 것이고 그런 나라도 많았을 것이다.

그런데 어떤 법칙이 있는 것인지 지상에서 영원한 나라는 없었다.

영원한 기업도, 영원한 사람도 없었다.

생겨나면 언젠가는 소멸된다.




그렇다면 성장의 길에서 소멸의 길로 접어드는 시점은 언제부터일까?

어떤 전조증상이 있지는 않을까?

이런 고민을 가지고 역사의 흥망성쇠를 살펴보면 소멸의 길이 보인다.

허버트 하인리히라는 사람은 대형사고의 전조증상을 연구하여 1:29:300이라는 법칙을 발표했다.

일명 하인리히의 법칙인데 대형 사고가 한 건 터지기 전에 29건의 작은 사고가 발생하고 그전에 300건의 자잘한 오류나 실수들이 나온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공장의 기계가 자꾸 고장이 나거나 사람이 다친다거나 하면 작은 실수나 사고라고 그냥 넘어가지 말라는 것이다.

큰 사고의 전조증상일 수 있다는 것이다.

한 국가가 망하기 전에도 여러 가지 전조증상이 나타난다.

천년왕조 신라가 망할 때는 지방호족들의 횡포가 심했고, 고려가 망할 때는 불교의 횡포가 심했다고 한다.

그러니까 국가 공동체의 쇠락에는 지도자들과 종교인들의 영향이 크게 작용한다.




물론 천재지변이나 전쟁 같은 주변 나라들과의 관계 때문에 국가가 순식간에 몰락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런 때에도 자세히 들여다보면 망한 나라에서는 위와 같은 공통적인 특징을 찾아볼 수 있다.

14세기의 중세 유럽에서는 페스트가 창궐하여 유럽 인구의 3분의 1이 목숨을 잃었다고 한다.

유럽 사회의 몰락을 가져온 엄청난 전염병이었다.

그러나 유럽 사회의 몰락에 대한 책임을 페스트에게 전가하는 것은 인간으로서 무책임한 일이다.

어느 시대에나 질병이 있었고 크고 작은 전염병이 있었다.

사회가 안정되려면 그런 공동의 문제가 발생했을 때 지도자부터 솔선수범하고 시민들이 힘과 지혜를 모아 함께 그 어려움에 대처해야 한다.

그런데 중세 유럽에서는 그러지 못했던 것 같다.

국가지도자들은 백성들이야 죽든 살든 자기 혼자만이라도 살아남으려고 피난을 갔고, 종교지도자들은 탐욕에 눈이 멀어 부패할 대로 부패했다.




어떻게 그렇게 평을 내릴 수 있는지는 그 시대에 나온 책을 보면 알 수 있다.

1348년 이탈리아에는 페스트가 만연했다.

그때 돈 많은 7명의 귀부인과 3명의 귀공자가 피렌체의 별장으로 피난을 갔다.

거기서 그들은 재미있는 이야기를 나누며 놀았다.

10명이 돌아가면서 10가지의 주제로 이야기를 했으니까 총 100가지의 이야기를 나눈 셈이다.

보카치오가 그 이야기들을 모아서 <데카메론>이라는 책을 썼다.

근대 소설의 시작을 알리는 책이다.

소설은 그 시대의 현실을 반영하는데 100가지 이야기 중의 상당수는 귀족들과 성직자의 타락상을 보여준다. 그 시대가 그랬다는 것이다.

그런 이야기를 하면서 그들은 웃고 춤을 추었다.

지도자들이 타락해 있었기에 이미 그 사회는 쇠락의 길을 걷고 있었던 것이다.

그로부터 170년 후인 1517년에 종교개혁이 일어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한 시대가 가고 한 시대가 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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