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계속 배우고 있는 이유

by 박은석


많이 배웠으면 배운 값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곡식이 익을수록 고개를 숙이듯이 사람도 많이 배울수록 겸손해져야 한다고 배웠다.

모범생 기질이 있던 나로서는 많이 배우면 저절로 고개가 숙여지는 줄 알았다.

많이 배울수록 겸손한 사람이 되고 이 사회에 덕을 끼치는 훌륭한 사람이 되는 줄 알았다.

그게 아니라는 사실은 어른이 되고서도 한참 후에나 알게 되었다.

아마 중고등학교 시절에 선생님들께서 그렇게 가르치셨던 이유는 많이 배워도 고개를 숙이지 않는 사람들이 많았기 때문일 것이다.

오히려 많이 배우면 배울수록 고개를 더 빳빳하게 치켜드는 사람들이 많다.

많이 배웠으니까 많은 정보를 알고 있고 그 정보를 이용해서 더 높은 단계로 뛰어오른다.

그동안 배우느라 고생을 많이 했는데 이제는 보상을 받아야 한다고 말한다.

자선사업가도 아닌데 남들을 위해서 애써 배운 지식을 쓰는 것은 손해라고도 말들을 한다.




옛날 선비들은 그래도 좀 낫지 않았을까 생각했다.

초등학교 5, 6학년 때 아버지에게 시조를 배우기 시작했는데 그때 송강 정철의 시조를 많이 읊었다.

‘이고 진 저 늙은이 짐 벗어 나를 주오.

나는 젊었거늘 돌이라도 무거울까.

늙기도 설워라커든 짐을 조차 지실까’ 이런 시를 얼마나 외웠는지 모른다.

<성산별곡>, <관동별곡>, <사미인곡>, <훈민가>들을 하나씩 섭렵해 나갔다.

그러면서 이런 위대한 선비와 같은 시대에 살았던 사람들은 참 행복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엄청난 나의 착각이었다.

송강 정철의 생애를 살펴보면서 그가 자신과 정치적인 노선이 다른 사람들을 가차 없이 처형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반역한 것도 아닌데 말이다.

그가 쓴 시조를 보면 굉장히 사람들을 아끼고 사랑하는 것 같은데 그의 삶은 그러지 못했다.

공자 왈, 맹자 완하는 책들을 읽었고 공부도 많이 했지만 지식이 삶을 대변해주지는 못했다.




다산 정약용처럼 자신이 배우고 익힌 것을 백성들을 위해서 아낌없이 내어놓는 사람을 만나는 일은 드물었다.

선비든 양반이든 일단은 자신의 입신양명을 위해서 공부를 했던 것 같다.

아니라고 할지 모르지만 나는 그렇게 느낀다.

많이 배울수록 고개를 숙이는 게 아니라 더욱 고개를 빳빳하게 세우는 사람들이 훨씬 많았다.

그들은 가방끈이 긴 것을 대단한 명예와 권세로 여겼다.

지금도 그렇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그 앞에서는 사람들이 고개를 숙일지 모르지만 돌아서면 내립다 욕지기를 한다.

전혀 존경하지 않는다.

다산 정약용처럼 시대가 흘렀어도 사람들에게 존중받는 이들을 찾아보기란 여간 어렵지 않다.

적어도 다산은 자신이 먼저 깨달은 사실을 사람들에게 알려주려고 했다.

사람들에게 더 나은 삶을 가르쳐주려는 마음으로 열심히 공부를 했다.

배워서 남 주자는 게 그의 학문하는 태도였고 마음이었다.




나는 기독교인이어서 제사를 지내지 않지만 위패나 제사 때 쓰는 지방에 쓰는 글귀를 알고 있다.

현고학생부군신위(顯考學生府君神位)이다.

돌아가신 아버지의 혼을 이곳에 부른다는 표식이다.

그런데 아버지가 살아생전에 어떤 분이었냐는 사실을 드러내는 자리에 ‘학생(學生)’이란 글자를 쓴다.

물론 관직에 올랐던 분이라면 그 관직을 쓰지만 대부분의 경우는 관직을 받지 못했으니까 그냥 학생이라고 쓴다.

왜 학생일까?

그건 일평생 공부하는 게 인생이기 때문이다.

조선시대에는 유학을 신봉했으니까 사람들은 자신이 성현들의 가르침을 배우는 학생이라고 여겼다.

배움의 경지를 깨쳤다면 ‘학생’이라는 두 글자를 없앴을 것이다.

그러나 평생 배우고 익혔어도 여전히 부족하다는 사실을 깨달았기에 자신을 ‘학생’이라고 인정했던 것이다.

얼마나 배워야 고개가 숙여지는지 아직도 모르겠다.

그래서 나는 여전히 배우고 있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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