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가는 길은 제대로 가고 있는 길이다

by 박은석


나는 산에 올라가는 것을 좋아하는데 남들과 시간이 맞지 않아서 홀로 산행을 한다.

홀로 산행을 하는 것은 그리 권장할 사항은 아닌데 그렇다고 해서 무슨 산악회 같은 데 가입하고 싶지는 않다.

함께 갈 친구가 있으면 좋고 그렇지 않으면 혼자 간다.

등산의 좋은 점은 여러 가지이겠지만 나에게는 생각할 시간을 많이 가질 수 있어서 좋다.

머리 아픈 일들을 어떻게 결정해야 할지, 복잡하게 꼬인 인간관계를 어떻게 풀어야 할지 별의별 생각을 다 할 수 있다.

앞뒷사람과 적당한 간격을 두고 걸어가기에 혼자서 중얼거릴 수도 있다.

가슴에 묵혀 있는 불편한 감정들을 한껏 토해놓기도 하고 흥얼거리며 흥에 겨워 노래를 부르기도 한다.

귀에 이어폰을 꽂고 노래를 듣는 것도 좋고, 이어폰을 빼서 새소리, 바람소리, 산소리를 듣는 것도 좋다.

그렇게 산속에서 몇 시간 실컷 걸으면 발은 아프고 몸은 고되지만 마음은 상쾌해진다.




등산객들이 많이 찾는 산들은 어느 산이나 입구에 이정표와 지도가 있다.

그 경로를 따라 대부분의 사람들이 산을 오른다.

그리고 한 번 올랐던 길을 기억했다가 다음번에도 그 길로 오른다.

그 길이 제일 안전하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한 번 올랐던 길이기에 그 길을 잘 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반면에 다른 길은 그 앞에 어떤 어려운 지점들이 있는지, 쉬운 길인지 어려운 길인지 알 수가 없다.

걸어보지 못한 길을 아는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그래서 가 보지 않은 길은 꺼려진다.

그런데 가끔은 다른 길로 가고 싶은 때가 있다.

어쩔 수 없이 새로운 길로 가야 할 때도 있다.

한 번도 걸어보지 않은 길을 걸을 때면 마음에 두려움이 밀려온다.

특히 나 혼자만 그 길을 걷고 있다는 생각이 들 때는 덜컥 겁이 난다.

주위를 둘러봐도 사람 그림자 하나 보이지 않는다.

길인 듯 길이 아닌 듯 가느다란 흔적들만 보면서 걸어야 한다.




산을 집처럼 드나드는 사람들이야 땅에 찍힌 자국 하나만 보더라도 그게 사람 발자국인지 짐승의 발자국인지 분별한다.

그런데 나 같은 사람은 그게 발자국인지 아닌지조차 분간을 못 한다.

그래서 한동안 ‘이 길이 맞는 길일까?’ 고민을 한다.

언젠가는 남한산성 숲길을 걷다가 그만 길을 잃어서 한 시간 동안 헤매기도 했다.

그러다가 엉뚱하게 출발지점으로 내려왔는데 그 짧은 시간에 내 마음은 두려움으로 방망이질을 했다.

그렇게 산에서 길을 잃어버린 것은 아닐까 하는 마음이 들 때 나뭇가지에 매달린 조그마한 끈을 발견하면 무척이나 반갑다.

어느 산악동회회에서 그 길을 걷다가 달아놓은 표식이다.

물론 자연을 훼손한다는 비판도 받지만 나처럼 길을 헤매고 있던 사람에게 그 표식은 안도의 한숨을 쉬게 한다.

이 길을 따라 누군가 지나갔기 때문이다.

이 길이 제대로 된 길이라는 것을 알려주는 흔적이기 때문이다.




그 끈을 따라가면 머지않아 사람들이 많이 왕래하는 곳에 다다를 수 있을 것이라는 소망이 생긴다.

그래서 마음이 평안해지고 발걸음도 가벼워진다.

소망이 현실이 되어 그 길에서 정말 누군가를 만나면 저절로 인사가 나온다.

생판 알지도 못하는 사람인데도 마치 이웃집 사람처럼 그 사람이 반갑게 여겨진다.

어쩌면 우리가 걸어가는 인생의 길이 이런 길 같다.

아직 걸어보지 않은 길이고 두려운 길이다.

나 혼자 걷는 길인 것 같고 길을 잃고 엉뚱한 곳으로 가는 것 같다.

하지만 이 길은 많은 사람들이 걸어간 길이며, 많은 사람들이 걸어가고 있는 길이고, 또 많은 사람들이 걸어갈 길이다.

나만 혼자 가는 길이 아니다.

내 앞에도 혼자 갔고, 내 옆에서도 혼자 가고 있고, 내 뒤에도 혼자 갈 것이다.

중간중간에 가느다란 끈 하나가 보이면 그 아래서 잠시 쉬고 다시 힘을 내서 걸어가는 길이다.

분명 제대로 가고 있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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