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학교 6학년 때 네 살 밑의 여동생을 데리고 공설운동장에 간 적이 있었다.
전국체전인지 아니면 전도체전인지 하여간 대단히 큰 체육대회가 며칠 동안 이어지던 날이어서 구경삼아 갔다.
지금의 부모들이라면 초등학생 오라비와 누이동생이 버스를 타고 멀리 간다면 기겁을 할 일이겠지만 그 당시 내 부모님은 무슨 믿음이 있었는지 흔쾌히 보내주셨다.
공설운동장에 가면서 동생에게 여러 번 잔소리를 했을 것이다.
절대로 오빠를 놓치면 안 된다.
멀리 가지 마라.
반드시 옆에 있어라.
그런데, 그렇게 조심하고 조심했는데 어느 순간 그만 동생을 잃어버렸다.
방금 전까지 같이 있었는데 순식간에 사라졌다.
큰소리로 동생의 이름을 부르며 사방팔방으로 뛰어다녔지만 동생의 그림자도 보이지 않았다.
마음속에서는 별의별 생각이 다 떠올랐다.
‘큰일 났다, 끝장났다’는 소리가 천둥처럼 들리는 것 같았다.
너무나 무서웠다.
그렇게 한참을 뛰어다니고 있었는데 확성기에서 동생의 이름이 들려왔다.
다시 귀를 기울여보니 내 동생의 이름이 맞았다.
어느 미아보호소에서 보호하고 있으니 보호자는 빨리 오라는 방송이었다.
단걸음에 미아보호소까지 달려갔다.
거기에 정말 동생이 있었다.
아마 어느 선생님께서 눈깔사탕 하나를 주시면서 달래고 있었던 것 같았다.
동생과 눈이 마주치는 순간 엄청 울었다.
다행이었다.
동생을 잃어버리고 찾기까지 한참 동안의 시간이 흐른 것 같았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길어야 10분 정도 되었던 것 같다.
하지만 10분이든 20분이든 간에 나에게는 그 시간이 영원처럼 오랜 길게 여겨졌었다.
그 시간 동안 나는 수백 번도 더 지옥을 내려갔다 온 듯한 기분이었다.
동생과 함께 미아보호소를 나서면서 우리는 손을 꼭 잡고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언제 그렇게 가슴 철렁한 일이 있었냐는 듯이 그날 신나고 재미있게 놀다가 왔다.
그날은 그렇게 일이 잘 마무리되었다.
하지만 지금껏 살아오면서 그때 못지않게 ‘큰일 났다’하는 생각이 들 때가 너무 많았다.
그런 위기의 상황에 맞닥뜨릴 때마다 어쩔 줄 몰라 하는 나 자신을 바라보면서 한심하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었다.
가만히 있었으면 괜찮았는데 괜히 나서서 일을 자초했다는 후회를 할 때도 있었다.
누군가 도와주는 사람이 있었다면 어려움을 겪지 않았을 텐데 하는 아쉬운 마음이 들 때도 있었다.
그런 마음을 가지고 다른 사람들을 보면 지나가는 모든 사람들이 다 부러웠다.
나처럼 어려움을 겪지 않는 것이 부럽고, 나처럼 불안해하지 않는 것 같아서 부러웠다.
내가 겪는 고민과 고통을 겪지 않는 사람들은 참 행복할 것 같아 보였다.
행복이 뭐 별다른 것이겠나?
내가 겪고 있는 속상한 일들을 안 겪으면 행복한 사람이고, 내가 가지고 있지 않은 것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행복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렇게 투덜대고 불행해하고 불만족하게 여겼던 시간들도 하나씩 지나갔다.
시간이 해결해주었는지 큰일 날 것만 같았던 일들도 여차 저차 지나갔다.
그리고 그때 끙끙 안고 있었던 불안과 두려움들도 사라졌다.
어느 날 문득 지나온 시간들을 돌아보니 그때는 그렇게 가슴을 졸였던 일들이 지금은 별것도 아닌 일처럼 여겨졌다.
괜히 내가 새가슴이 되어 혼자 마음 졸이며 겁을 집어먹었던 것 같다.
지금은 방법을 알았으니까 다시 그때로 돌아간다면 ‘이까짓 것쯤이야!’ 하고 큰소리치고 과감하게 처리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래 맞다.
지금은 하늘이 무너지는 것처럼 보이는 일도 시간이 지나면 별일 아닐 수 있다.
잔뜩 쫄아서 ‘이걸 어떡해?’하며 호들갑을 떨지 말자.
시간이 지나면 지금 긴장하고 겁먹은 나의 모습들도 즐거운 추억거리가 될 것이다.
그러니 ‘이걸 어떻게 해?’라 하지 말고 ‘이까짓 것쯤이야!’라고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