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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은석 Jul 26. 2022

손 한 번 들어 올리면 금방 해결된다


집에서 한 시간 거리에 있는 곳을 약속 장소로 잡았다.

퇴근 시간에는 길이 막힐 수도 있으니까 두 시간 전에 출발할까 생각했다.

한 시간 반 전에 출발했다가 혹시나 중간에 무슨 사정이 생기면 난처해질 것 같았다.

그런데 두 시간 전에 출발했다가 너무 일찍 도착할 수도 있다.

그러면 기다리는 시간이 너무 아까울 것 같았다.

그래서 딱 잘라서 1시간 45분 전에 출발했다.

처음에는 길이 뻥 뚫려 있었다.

하지만 가면 갈수록 자동차는 많아지고 속도는 줄어들었다.

내비게이션에서 안내해주는 예상 도착 시간이 점점 늦춰지고 있었다.

하여간 내가 좀 바쁘게 가려고 하면 길이 협조를 안 해 준다.

그러면서도 내가 시간이 많이 남아서 좀 천천히 가려고 하면 그때에는 어떻게 알았는지 길거리에 자동차들이 자취를 감춘다.

신호등도 내가 도착하기만 하면 열린다.

천천히 가려고 하는 날은 너무 일찍 도착해서 난처하게 된다.




오늘도 그 패턴이 나를 피해 가지 않았다.

내가 선 줄은 줄어들 줄을 모르는데 옆줄은 잘만 줄어든다.

내가 차선을 변경해서 옆으로 가면 그때에는 조금 전까지 내가 섰었던 줄이 줄어든다.

기가 막히게 내 움직임을 알아챈다.

심호흡을 하고 마음을 안정시키려고 하면 내 앞에 꼭 차 한 대씩 끼어든다.

끼어들지 못하게 하려고 앞차와 조금만 거리가 벌어지면 급가속을 하는데도 내 앞에 차들이 끼어든다.

그럴 때는 예수님의 말씀이나 공자님의 말씀도 하나도 기억나지 않는다.

“이런...”으로 시작하는 말들이 마구 쏟아져 나온다.

한바탕 구시렁거리고 나면 속이 후련해진다.

길이 막히는 게 바로 끼어드는 차들 때문이라며 그들에게 덤터기를 씌운다.

그렇다고 해서 나는 질서를 잘 지키느냐고 하면 그것도 아니다.

나도 눈치를 보다가 잽싸게 앞으로 끼어들기도 한다.

그럴 때는 넉넉한 거리였기에 들어왔다고 스스로 위안을 준다.




가끔은 기분이 나쁜지 나를 따라오는 운전자들이 있다.

뒤에서 상향등도 빠샥빠샥 올리고 크락션도 빵빵 울린다.

꼭 옆에까지 따라와서 창문을 내리고 눈을 흘긴다.

이런 상황까지 가면 나도 마음이 요동을 친다.

같이 창문을 내려서 왜 그러냐는 듯이 쳐다볼 때도 있다.

뭐라고 욕을 하는 사람은 욕과 함께 금세 사라진다.

그런 사람은 별로 무섭지가 않다.

하지만 창문을 내리고 말 한마디 하지 않고 눈을 째려보는 사람도 있다.

그런 사람이 정말 무서운 사람이다.

그런 사람을 만났을 때 나도 같이 눈을 부라리면 좋을 게 하나도 없다.

그런 사람에게는 오른손 한 번 들어주는 게 제일 좋다.

오른손을 들어 올릴 때, 주먹을 쥐면 안 된다.

그건 싸우자는 표현으로 읽힐 수 있다.

그럴 때는 손바닥을 펴서 손을 들어 올려야 한다.

그러면 상대방은 내가 미안해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해서 다시 창문 올리고 지나간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지켜야 할 질서가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

우리가 알고 있는 질서도 있고 모르는 질서도 있다.

그러니까 우리가 모든 질서들을 잘 지킨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제아무리 성인군자라도 상대방을 불편하게 할 수 있다.

상대방으로 하여금 ‘욱’하는 심정을 자아내게 만들기도 한다.

그럴 때 상대방이 왜 그렇게 반응하는지 의아해할 필요는 없다.

굳이 상대방에게 왜 그러냐고 물어볼 필요도 없다.

오히려 말을 안 하는 게 낫다.

말이 아닌 다른 방법으로서 대화를 나누는 게 훨씬 낫다.

그 방법 중의 하나가 바로 오른손을 손바닥이 보이게끔 들어 올리는 것이다.

미안하다고 하는데, 잘못했다고 표현하고 있는데, 실수를 인정하는데, 몰라서 그랬다는데 어쩔 것인가?

받아줘야지! 비단 운전할 때만 이 방법이 통하는 것은 아니다.

어느 장소에서나, 누구에게나 손 한 번 들어 올리면 어지간한 일들은 금방 해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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