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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은석 Jul 27. 2022

더운 날씨를 생각하며 옛 어른들을 떠올려 본다


연일 낮 기온이 35도를 넘나들고 있다.

건물 밖에 나와서 5분만 걸어도 땀이 삐질삐질 난다.

땀 흘리기를 좋아하는 나로서도 요즘의 날씨가 불편한데 더위를 참기 힘들어하는 사람들은 오죽할까?

저녁 10시에 운동한답시고 탄천을 한 2킬로미터 뛰면 옷이 축축하게 땀으로 젖는다.

그 모습으로 집에 들어서면 물에 빠졌다가 겨우 살아 나온 몰골이다.

지금도 이렇게 더운데 앞으로 7월 말과 8월이라는 여름의 복병을 만나면 그때는 어떻게 지내려나 싶다.

삼복더위를 이기자며 몸에 좋은 음식을 먹자고 하는데 생각만 해도 뜨끈뜨끈한 기운이 몰려오는 것 같아서 싫다.

차라리 시원한 물냉면이나 얼음 동동 띄운 콩국수, 아니면 해산물이 듬뿍 들어간 물회 한 사발 먹고 싶다.

그다음에는 에어컨 잘 돌아가는 시원한 곳에서 몇 시간이고 머물고 싶다.

어디까지나 바람일 뿐이다.

맡겨진 일도 해야 하고 만나야 할 사람도 만나야 한다.




날씨가 이렇게 덥다 보니까 사람을 만나면 맨 먼저 날씨 얘기를 한다.

더운 날씨에 어떻게 지내냐고 묻는다.

그러면 더워도 더워도 이렇게 더운 날은 없었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고 더워 죽겠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집에서 콕 박혀 지내는 게 피서라고 하기도 하고 에어컨 잘 나오는 건물에 들어가서 더위를 피한다는 사람도 있다.

얼마 전에 누가 나에게 같은 질문을 했다.

이 더위에 어떻게 지내냐고 말이다.

그때 문득 “더운 날씨에 덥게 지내고 있습니다.”라고 대답했다.

대답을 하고 나서도 내가 멋쩍어 보였다.

듣는 사람도 이런 대답은 처음 들었는지 허허 웃었다.

그런데 그 이후에 이 말이 괜찮아 보였다.

여름은 더운 계절이고 더운 계절에는 덥게 지내는 게 자연스러운 일이다.

더위를 피하는 것만 능사가 아니다.

더위를 제대로 맞이하는 것도 좋다.

이열치열(以熱治熱)이라는 말처럼 더위는 더위로 다스릴 필요도 있다.




지금과는 자연환경의 차이가 있었겠지만 조선시대에도 여름에는 몹시 더웠을 게 뻔하다.

그 더위에 우리 조상들은 어떻게 살았을까?

동빙고, 서빙고에서 얼음을 꺼내서 먹을 수 있는 사람은 궁궐에 있는 사람이나 가능했다.

서민들 중에서도 돈 꽤나 있는 사람은 자기 집 그늘진 곳에 빙고를 만들어 놓고 겨울에 얼음을 채워놓았다가 한여름에 조금씩 꺼내서 썼을 것이다.

그런데 그럴 형편이 안 되는 사람들은 어쩔 수 없이 맨몸으로 더위를 견뎠을 것이다.

그런데 상놈들이야 더우면 옷을 벗어젖히고 개울에 첨벙 들어가서 미역이라도 감았겠지만 양반은 그러기가 쉽지 않았을 것이다.

언젠가 조선시대 여성들의 정식 복장에 대한 글을 읽은 적이 있다.

내 기억이 정확하다면 속옷부터, 속저고리, 겉저고리, 장옷까지 모두 합쳐서 일고여덟 벌은 되었던 것 같다.

찜통더위에 그렇게 옷을 껴입는다는 것은 그 자체가 고역이었을 것이다.




양반들은 체통을 지키기 위해서 격식을 따져가며 옷을 입었다.

관직이 높을수록 옷차림에도 더욱 엄격했다.

왕이 어머니인 대비보다 먼저 세상을 떠났을 때 그 어머니는 몇 년 동안 상복을 입어야 하느냐의 문제로 온 나라가 시끄럽기도 했다.

입을 옷이 한 벌밖에 없는 상놈들에게는 그게 무슨 싸움거리가 되느냐고 했겠지만 높은 양반들은 목숨을 걸고 싸웠다.

대문 밖을 나서는 양반집 여인네들은 머리끝까지 장옷으로 덮었는데 숨 막혀 죽지 않은 것만도 다행일 것 같다.

먼 길 가는 이들은 가마를 타고 갔다는데 상놈들에게 얼굴을 보이지 않으려고 가마의 창문을 가려 놓았으니 그 가마야말로 불가마였을 것이다.

서양에서는 왕이 되려는 자는 왕관의 무게를 견뎌야 한다고 했는데 조선에서는 왕이 되려는 자는 왕복의 더위를 견뎌내야 했다.

그런 시대에도 우리 조상들은 잘 견뎌냈는데 올해의 이런 더위쯤이야 못 견디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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