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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 벅찬 오늘 하루
살만큼 살았다는 사람은 없다
by
박은석
Jul 30.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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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르신들과 대화를 나누다 보면 어느 순간에 “에휴, 나는 살만큼 살았는데 후손들이 걱정이지.”라는 말씀을 하신다.
우리나라가 정치적으로 더욱 안정되고 경제적으로 계속 성장하고 외교적으로는 평화를 유지하면서 국제적인 위상이 높아지기를 바라시는데 뭔가 엇박자로 가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드셔서 그러신다.
가족들도 좀 편안하고 안정된 직장에 취직하고 좋은 배필 만나서 후손들 잘 낳아 기르면 좋겠는데 그게 맘대로 안 되어서 그렇다.
앞으로 다가올 세상은 왠지 살기 힘든 세상이 될 것 같아서 그러신다.
당신들은 어려운 시대에 태어나서 힘들게 힘들게 살다 보니까 어느새 좋은 세상을 만나게 되었는데 후손들은 그렇지 못할 것 같아 보이기 때문에 그러신다.
지구촌 저편에서 전쟁과 기근, 경제가 파탄난 나라들의 소문이 들리면 더욱 그러신다.
우리라고 그러지 말라는 법 없으니까 걱정해야 한다고 하신다.
당신들은 사실만큼 사셨으니까 지금이라도 당장 아쉬움 없이 갈 수 있다고 하신다.
도대체 어디를 가시려고 그러시는지 모르겠다.
당신들은 누릴만큼 누리셨으니까 힘든 시대가 오더라도 아깝지 않다고 하신다.
이것도 뭐가 아깝고 뭐가 아깝지 않은 것인지 알 수가 없다.
그 말씀의 뉘앙스를 따라서 “그러면 정말 지금 죽어도 원이 없어요?”라고 여쭤볼까 싶다가 그만둔다.
“누릴만큼 누리셨으니까 그럼 지금 누리시고 있는 것 다 나눠줘 보세요.”라고 말씀드릴까 생각하다가 그만둔다.
살만큼 살았다고 말할 수 있는 기준이 있을까?
나이 몇 살이 되면 그렇게 말할 수 있을까?
1945년 광복을 맞이할 때 우리나라의 평균수명이 45세 정도였다고 한다.
내 어렸을 때만 하더라도 나이 60이 넘어 환갑을 맞이하면 건강하게 오래 사셨다고 했다.
70이 넘으신 분은 장수하신다고 했다.
그 나이쯤이면 살만큼 살았다고 할 수 있을까?
요즘은 연세 많으신 어르신들이 참 많으시다.
특히 우리 동네는 평균 연령이 꽤 높다.
그러다 보니 70세가 넘으신 분들이 60대의 어른들에게 젊은 사람이라고 부른다.
80대의 어르신들은 또 70대의 어르신들에게 젊은 사람이라고 부른다.
90대의 어르신들이라고 다르지 않다.
그분들은 10년 전에는 뛰어다녔다고 하신다.
이제야 좀 오래 산 것 같다고 하신다.
그렇다면 살만큼 살려면 90년 정도 살아야 하는 것일까?
그것도 아닌 것 같다.
90세를 맞이한 사람은 91세, 92세를 어떻게 살아야 할지 알지 못한다.
지금껏 살아보지 못했으니까 당연히 모를 수밖에 없다.
90대의 인생은 이제 처음이다.
90대의 인생을
99세까지는
살아봐야 90대를 살만큼 살았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100세인 사람은?
그 사람도 마찬가지다.
아직 살만큼 사신 게 아니다.
이제야 겨우 100세 시대를 살기 시작하신 것이다.
열심히 살아가셔야 한다.
저녁 늦게까지 날아다니던 하루살이가 자기 친구에게 하는 말이 “내 친구놈 하나가 불행하게도 아침 8시에 갔어.”라고 했다.
그 말을 들은 친구는 “그놈 참 일찍 갔군.” 맞장구를 쳤다.
고작 하루를 살면서 누구는 길고 누구는 짧다고 한다.
우리가 봤을 때는 어이없는 일이다.
그런데 우리 인간의 삶도
그러지 않을까?
우리가 봤을 때는 누구는 오래 살았고 누구는 짧게 살았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저 위에서 우리를 지켜보는 분이 있다면 그분은 우리가 하는 말이 우스울 것이다.
살만큼 살았고 누릴만큼 누렸다는 말은 우리가 할 말은 아닌 것 같다.
아직 내가 살아보지 못한 날이 많다.
내가 살아보지 못한 인생도 많다.
만약 내 삶이 한 편의 연극이라면 나는 고작 하나의 배역만 맡았을 뿐이다.
한 배역이 끝나야 다른 배역을 맡을 수 있을 텐데 아직 이 하나의 배역도 다 끝내지 못했다.
여전히 살만큼 살지 못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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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은석
에세이 분야 크리에이터
직업
칼럼니스트
2009년 1년 200권 읽기 운동 시작. 2021년부터 1년 300권 읽기 운동으로 상향 . 하루에 칼럼 한 편 쓰기. 책과 삶에서 얻은 교훈을 글로 나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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