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지 못하고 듣지 못하고 말을 하지 못하는 장애를 지녔던 헬렌 켈러가 53세가 되었을 때 수필집을 한 권 냈다.
그 책에 <사흘만 볼 수 있다면>이라는 20페이지 정도의 짧은 글이 실려 있다.
제목부터가 의미심장하다.
하루도 아니고 이틀도 아니고 ‘3일만 볼 수 있다면’이다.
그 글을 쓰게 된 배경은 이렇다.
어느 날 숲속을 다녀온 친구에게 헬렌 켈러가 숲속에서 무엇을 보았냐고 물었다.
그 질문에 친구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별로 특별한 것이 없었다고 대답했다.
헬렌 켈러는 이해할 수 없었다.
두 눈이 보이고 두 귀가 들리는데도 특별한 것을 보지도 못하고 듣지도 못했다는 게 이상했다.
더군다나 친구는 말을 할 수 있는 사람인데 별로 할 말이 없다는 게 믿어지지 않았다.
만약 자신이 친구처럼 눈으로 볼 수 있고 귀로 들을 수 있고 입으로 말할 수 있다면 정말 많은 것을 보고 듣고 말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헬렌 켈러는 자신이 단 사흘만이라도 볼 수 있다면, 어떤 것을 보고 들을 것인지 그 목록을 적어보았다.
그리고 그 내용을 <사흘만 볼 수 있다면(Three days to see)>이라는 제목으로 1933년 1월 호 <애틀랜틱 먼스리>에 발표했다.
헬렌 켈러의 글은 경제 대공황의 후유증에 시달리던 미국인들에게 많은 위로와 감동을 안겨주었다.
그래서 <리더스 다이제스트>는 그 글을 20세기 최고의 수필로 꼽았다.
헬렌 켈러가 꿈꿨던 사흘 동안의 여정은 다음과 같다.
“첫째 날, 나는 친절과 겸손과 우정으로 내 삶을 가치 있게 해 준 설리번 선생님을 찾아가 만날 것이다.
그래서 이제껏 손끝으로 만져서만 알 수 있었던 설리번 선생님의 얼굴을 몇 시간이고 물끄러미 바라보면서 그 모습을 내 마음속에 깊이 간직해 두겠다.
그리고 밖으로 나가 바람에 나풀거리는 아름다운 나뭇잎과 들꽃들, 그리고 석양에 빛나는 노을을 보고 싶다.”
“둘째 날, 나는 먼동이 트며 밤이 낮으로 바뀌는 웅장한 기적을 보고 싶다.
그러고 나서 서둘러 메트로폴리탄에 있는 박물관을 찾아가 하루 종일 인간이 진화해온 궤적을 눈으로 확인해 볼 것이다.
그리고 저녁에는 보석 같은 밤하늘의 별들을 바라보면서 하루를 마무리하겠다.”
“마지막 셋째 날, 나는 사람들이 일하며 살아가는 모습을 보기 위해 아침 일찍 큰길에 나가 출근하는 사람들의 얼굴 표정을 볼 것이다.
그다음에는 오페라하우스와 영화관에 가서 공연들을 보고 싶다.
어느덧 저녁이 되면 네온사인이 반짝거리는 거리의 쇼윈도에 진열되어 있는 아름다운 물건들을 보면서 집으로 돌아오고 싶다.
그리고 나를 이 사흘 동안만이라도 볼 수 있게 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의 기도를 드리고 다시 영원히 암흑의 세계로 돌아가겠다.”
헬렌 켈러가 그토록 보고 싶어 했고 듣고 싶어 했던 일들을 우리는 날마다 경험하고 있다.
헬렌 켈러는 그것들을 기적이라고 하며 놀라워했는데 우리는 그것들을 일상의 평범한 일이라고 하며 당연하게 여긴다.
우리에게는 평범한 일이 누군가에게는 기적이 되는 세상을 우리가 살아가고 있지만 우리는 그 사실조차 깨닫지 못하고 있다.
마치 눈이 안 보이는 사람처럼, 귀가 안 들리는 사람처럼, 입으로 말을 할 수 없는 사람처럼 아무런 감정도 느끼지 못한 채 무덤덤하게 살아가는 것은 아닐까?
이런 무감각한 나 같은 사람을 위해서 헬렌 켈러가 따끔한 충고를 해주었다.
“내일이면 귀가 안 들릴 사람처럼 새들의 지저귐을 들어보아라.
내일이면 냄새를 맡을 수 없는 사람처럼 꽃향기를 맡아보아라.
내일이면 더 이상 볼 수 없는 사람처럼 세상을 보아라.”
오늘까지는 일상이고 평범하다고 여겼던 일들이 내일이면 다시는 경험할 수 없는 일이 될 수도 있다.
그때 뒤늦게나마 깨달을 수 있을까?
오늘이 기적이었다는 사실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