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평생 잘 놀아야 하는 놀이터일지 모른다

by 박은석


대한민국에서 집값이 비싸기로 유명한 분당에서의 생활을 정리하고 강원도 횡성에서 농사를 지으며 살고 계시는 분이 있다.

농사라고 해서 넓은 논밭을 일구는 것은 아니고 산 아래에 집 한 채 짓고 텃밭을 일구며 사신다.

텃밭이라도 100평이 넘으면 농사짓는 사람으로 봐야 한다.

고추를 심고, 가지를 심고, 상추와 깻잎, 감자와 고구마, 토마토와 옥수수, 양파와 마늘을 조금씩만 심어도 일년내내 흙에서 뒹굴며 살아야 한다.

어렸을 적 텃밭이 딸린 집에서 살아봤기에 그 정도는 나도 안다.

서울과 경기도의 삐까번쩍한 도시에서 평생을 살다가 퇴직 후에 농촌으로 가서 살기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마을 사람들과의 관계도 잘 맺어야 하고 서툰 농사 기술을 배우기까지 숱한 시행착오도 겪게 된다.

농사라는 게 씨를 뿌리면 저절로 싹이 나서 자라고 열매를 맺는다는 착각을 해서는 안 된다.

엄청난 관리와 돌봄이 필요하다.




그렇게 고생고생해서 텃밭에서 뭘 좀 수확을 하면 그분들은 한 박스 포장을 해서 나에게 보내주신다.

벌써 몇 년째 그렇게 해오고 계신다.

어떤 때는 상추와 고추가 한가득이고 어떤 때는 토마토와 감자를 보내주시기도 하신다.

오늘은 가지 말린 것 한 봉지에 토마토즙 두 병, 매실 한 병, 커다란 양배추 하나에 덩치 큰 고구마 두 개를 보내주셨다.

우리 식구들이 그것들을 좋아하는지 즐겨 먹는지는 묻지도 않으신다.

몸에 좋은 유기농 채소니까 두고두고 잘 먹으라고만 하신다.

나는 또 군소리 없이 감사하다며 인사를 한다.

그러면서 생각을 해 본다.

‘도대체 왜 멀쩡한 분당의 집을 팔고 시골에 내려가 사실까?’

거기가 당신들의 고향도 아니고 그렇다고 당신들께서 어려서 농사를 지으며 자란 분들도 아니시다.

아무 연고도 없는 땅에 내려가셔서 햇볕에 검게 그을린 모습으로 살아가신다.

완전히 시골 사람 다 되셨다.




그분들이 강원도 횡성에 내려가서 사는 이유는 한마디로 그게 좋아서였다.

도시 사람의 시각에서 보면 불편한 게 한두 가지가 아니다.

병원도 없고 마트도 없고 카페도 없고 도서관도 없고 맛있는 식당도 없다.

모든 게 다 없으니 그런 데서 어떻게 살 수 있을까 염려가 된다.

하지만 그분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신다.

그곳에 없는 것들을 보시는 게 아니라 거기에 있는 것들을 보신다.

시골이니까 공기가 맑고, 당신들이 농사지은 것이니까 믿을 수 있고, 이웃사람들이 친절하게 도와주고, 가끔씩 분당에 오시면 어디 나들이 가는 것 같아 기분이 좋고, 둘이 매일 뭔가 하고 있으니까 더 건강해졌다고 하신다.

그분들의 말씀을 종합해 보면 그곳에서의 삶이 재미있다는 것이다.

마치 소꿉놀이하는 어린아이들처럼 농촌에서의 삶에 흠뻑 빠져 있다.

애써 농사지은 것들을 나 같은 사람에게 공짜로 나눠주시는 것도 재밌어하신다.




어떤 사람들은 일분일초를 낭비하지 않고 부지런히 일을 해서 끊임없이 뭔가 모으려고 한다.

베르그송이 주창했다는 호모 파베르(Homo Faber, 도구적 인간) 같은 사람들이다.

이들은 끊임없이 무언가를 만들어내기는 하는데 그것을 제대로 써보지도 못한다.

뭘 좀 써 보려고 하면 그 사이에 또 새로운 것이 만들어질 테니까 말이다.

평생 무언가 만들면서 일만 하다가 간다.

오늘날 현대인들이 그렇게 사는 것 같다.

그런데 횡성에 가신 그분들은 일을 하는 게 아니라 매일 놀면서 지내시는 것 같다.

농사도 노는 것이고 사람을 만나는 것도 노는 것이고 시골에서의 삶 자체가 다 노는 것 같다.

네덜란드의 역사학자인 요한 호이징하(Johan Huizinga)가 주창한 호모 루덴스(Homo Ludens, 놀이하는 인간) 같다.

그런데도 잘 살아가신다.

놀면 뭐하냐고 하지 말아야겠다.

어쩌면 인생은 평생 잘 놀아야 하는 놀이터일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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