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있는 것, 그것이 사랑이다

by 박은석


내가 아는 어떤 분의 이야기이다.

젊었을 때 그의 부인이 몹시 아팠다고 한다.

병원도 많이 다녔을 텐데 별 차도도 없었다.

이런 경우에 우리나라 사람들은 한방으로 고칠 수는 없는지 또는 민간요법은 없는지 찾아본다.

또 주변에서도 그런 질병에는 이러저러한 것이 좋더라는 말을 들려준다.

그분에게도 누군가 그랬을 것이다.

이성적인 사고로 세상을 재단하려던 젊음의 패기도 아내의 아픔 앞에서는 백기를 들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틈만 나면 약초를 찾으러 산으로 들로 나갔다고 한다.

그런데 아무리 젊었어도 산속을 혼자 누비는 것은 무척 무서웠다고 한다.

그래서 이제 막 걸음마를 배울까 말까 했던 자기 딸을 등에 업고 산에 갔다고 한다.

갓난아기가 그분에게 무슨 도움을 줄 수 있었을까?

오히려 울고 보채면서 폐만 끼쳤을 것이다.

그런데 그분은 딸을 등에 업고 나가면 이상하게도 마음이 든든했다고 한다.




사람은 혼자 살아갈 수 없다는 사실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굳이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했다는 사람은 사회적 동물이라는 말을 끌어오지 않아도 된다.

아리스토텔레스가 했다는 더 정확한 말은 사람은 정치적 동물(호모 폴리티쿠스, Homo Politicus)이었다며 사회적 동물과는 미묘한 차이가 있다고 주장하는 이들도 있다.

어쨌거나 사회적이든 정치적이든 사람은 다른 사람과 함께 살아야 한다는 말에는 딴지를 거는 사람이 없을 것이다.

상대방이 나에게 도움이 되느냐 도움이 되지 않느냐는 그다음의 문제이다.

내가 아는 그분처럼 딸내미는 그분에게 어떤 물리적인 힘을 제공해주지는 않았다.

그렇다고 해서 딸내미가 그분에게 아무런 도움을 주지 않았다고도 할 수 없다.

딸내미는 아빠의 등에 기대서 쌔근쌔근 잠을 잤겠지만 그 아빠는 딸내미를 생각하고 아내를 생각하면서 더욱 용기를 내고 힘을 낼 수 있었을 것이다.




자신이 상대방에게 전혀 도움을 주지 못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특히 몸이 약해서 병치레를 많이 하는 사람들이 그런 말을 많이 한다.

‘저 사람이 나를 만나지 않고 다른 사람을 만났더라면 더욱 행복했을 텐데 괜히 나를 만나서 고생을 하는구나!’ 생각을 한다.

그럴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고생을 하고 있는 것은 분명 맞다.

그러나 다른 사람을 만났다고 해서 고생을 안 하는 것은 아니다.

아마 다른 종류의 고생을 할 것이다.

어차피 인생은 고생의 바다를 건너는 것이니까 말이다.

그러니까 상대방이 고생을 하는 것 때문에 너무 미안해하지는 말았으면 좋겠다.

그가 고생을 하는 것도 곰곰이 생각해 보면 그가 택한 일이다.

분명 그는 고생을 하면서도 삶의 보람을 찾고 있을 것이다.

그렇게 깊은 사랑이 있었는지 그 자신도 놀라고 있을 것이다.

그러면서 인생의 신비를 조금씩 깨달아가고 있을 것이다.




에밀 아자르라는 필명으로 쓴 로맹 가리의 <자기 앞의 생>을 보면 가난한 자, 범죄자, 성전환자, 아랍인, 유태인, 독거노인, 창녀의 아이들, 그 아이들을 키워주는 사람 등 사회의 밑바닥 인생은 죄다 나온다.

이들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일까 물어보면 대뜸 ‘돈’이라고 할 것이다.

하지만 작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는 불법 보육시설을 운영하는 로라 아줌마와 버려진 아이인 모모(모하메드)를 통해 사람은 사랑으로 살아간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로라 아줌마는 모모를 조금이라도 오래도록 자기 곁에 두려고 4살이나 나이를 깎아서 키웠다.

모모는 로라 아줌마를 떠나지 않고 그녀가 외롭게 죽지 않도록 그 죽음의 자리를 지켜주었다.

이들은 서로에게 대단한 도움을 주지는 않았지만 엄청난 것을 주었다.

그것은 함께 있는 것이었다.

그게 사랑이었다.

누구나 자기 앞에 있는 생은 사랑으로 살아가야 한다는 사실을 알려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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