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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은석 Aug 11. 2022

길 위에서 길을 잃어버렸다.  길을 찾아야 한다


길을 잃어버린 것 같다.

분명히 이 길이 맞다고 생각하면서 여기까지 왔는데 이 길이 아닌 것 같다.

길 위에서 길을 잃어버린 것 같다.

나를 따르라고 외쳤던 사람이 저 앞에서 걸어가고 있는데 그 사람도 길을 잃은 것 같다.

이전에 패기 넘치던 자신감은 사라졌고 얼굴은 잔뜩 상기되어 있다.

‘이 길이 아닌데?’라며 속으로 중얼거리고 있는 것 같다.

분명히 이곳도 길은 길인데 길이 아닌 것 같다.

길 위에서 길을 잃어버렸다는 것이 말이 되지 않는 것 같은데 실제로 그렇게 된다.

길을 나서기 전까지는 잘 보였다.

저 멀리서 보았을 때는 이 길을 따라가면 저곳이 나올 것 같았다.

그런데 막상 길을 떠나 보니까 이 길이 저곳으로 가는 길이 아닌 것 같다.

돌아가면 어떨까 싶은데 지금까지 온 길이 너무 아까워서 선뜻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있다.

혹시 이 길 끝에 저곳으로 닿을 수 있을 것이라는 실낱같은 희망만 붙들고 있다.




이 길이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을 했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다.

갈림길이 나왔을 때 고집대로만 갈 게 아니라 다른 길도 눈여겨봤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다.

길을 잃어버린 것 같았을 때 재빨리 길을 물어봤어야 했는데 그러지도 못했다.

그러는 동안에 점점 더 깊은 길로 들어섰고 점점 더 깊이 길을 잃어버린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길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분명히 이 길과 연결된 길이 있다.

그 길을 찾지 못했을 뿐이다.

어디서 그 길을 찾을 수 있는지도 알고 있다.

길은 길 위에서 찾아야 한다.

길을 걷는 것도 길 위에서 걷는 것이고 길을 찾는 것도 길 위에서 찾는 것이다.

길을 물을 때도 길 위에서 묻고 길을 잃어버릴 때도 길 위에서 잃어버린다.

우리가 만난 사람도 길 위에서 만났고 우리가 겪은 일들도 길 위에서 겪었다.

우리는 삶의 단 한순간도 길을 떠난 적이 없다.

모든 삶의 순간이 다 길 위에 있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1957년에 미국의 작가 잭 캐루악은 <길 위에서>라는 책을 발표했다.

주인공 샐 파라다이스와 그의 친구 딘 모리아티가 이러저러한 이유로 4번에 걸쳐서 미국 땅을 횡단하고 종단한 이야기를 다루는 책이다.

가난한 여행객이 길바닥에서 겪는 다양한 이야기들을 다루고 있다.

사람을 만나서 사랑도 하고, 술에 찌들어서 폐인처럼 지내기도 하고, 날품팔이로 며칠 견뎌보기도 하고, 지나가는 자동차를 얻어 타서 여기에서 저기까지 가기도 한다.

그 와중에 별의별 부류의 인간들을 만난다.

멀쩡한 대학생이 왜 공부는 안 하고 이렇게 길을 떠난 것일까?

번듯한 직장에 취직해서 돈을 벌어야 하는데 왜 그 청춘의 시간에 길바닥에 드러누워 있는 것일까?

1950년대라면 미국이 경제적으로 엄청난 번영을 구가하고 있을 때였다.

하지만 작가인 캐루악은 그 시대가 길을 잃어버렸다고 본 것이다.




그는 물질주의가 지배하는 풍요로운 사회가 정답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나는 맞고 상대방은 틀렸다고 하는 냉전체제가 바람직한 사회는 아니라고 생각했다.

진정한 행복을 얻으려면, 진정한 자유를 얻으려면 길을 떠나야 한다고 생각했다.

길 위에 있을 때 진정한 깨달음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 믿었다.

그래서 길을 떠나는 세대들에게 진정한 축복이 내린다(beatific)고 생각했다.

그리고 축복이 내리는 그 세대를 ‘비트(beat)세대’라고 불렀다.

잭 캐루악 이후에 배낭 하나 짊어지고 길을 떠나는 젊은이들이 미국 사회에 큰 파장을 일으켰다.

그 현상이 긴 시간 동안 이어지지는 않았지만 충분한 메시지는 전달해주었다.

맹목적으로 따라나서지 말라는 것이다.

내가 가는 길이 잘못된 길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걸어온 길에서 돌이켜 ‘그 길’을 찾아야 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지금 우리 지도자들에게 이런 마음이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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