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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은석 Aug 19. 2022

책이 있어 참 즐거운 인생이다


김호연 작가의 <불편한 편의점2>를 읽으면서 우리 집 앞에 있는 편의점을 생각해 보았다.

알바하는 분들은 묵묵히 자신들의 일을 하지만 내 또래인 사장님은 나를 단골로 생각하는지 반갑게 맞아주고 계산할 때 덤으로 뭐 하나 얹어주기도 한다.

밤늦게 가면 마침 갓 유통기한이 지난 제품인데 먹어보라고 권하기도 한다.

자신들도 먹는 거니까 괜찮을 거라면서.

이러면 손해 볼 텐데 하면서도 나는 감사히 받는다.

내가 뭐라도 하나 더 얻어먹어서 그런지 다른 가게는 신경이 안 쓰이는데 집 앞의 편의점만큼은 망하지 말고 잘 운영되었으면 좋겠다.

그래서인지 편의점 앞을 지날 때는 눈길이 저절로 그곳으로 향한다.

야외 테이블에 앉아서 라면을 먹고 맥주를 마시는 사람들을 보면 꼭 <불편한 편의점>에 나오는 등장인물들 같은 생각도 든다.

나름대로 인생의 고민이 있을 텐데 편의점에서 새로운 희망을 발견했으면 좋겠다.




데이비드 샐린저의 <호밀밭의 파수꾼>을 읽을 때는 반항끼 가득했던 중고등학생 시절을 생각해 보았다.

어른들의 말씀에 토를 달고 싶었고 정해진 규율을 깨뜨리고 싶은 마음이 발동을 했었다.

앞날을 알 수 없는 우울한 분위기를 간직한 채 세상 끝까지 가보고 싶었다.

누가 호밀밭이 어디에 있는지 알려준다면 나도 호밀밭 끝, 그 경계선에서 더 이상 여기로 넘어오지 말라고 외치는 파수꾼처럼 서 있고 싶었다.


파수꾼을 생각하고 보니 마리아 레마르크의 <서부전선 이상 없다>가 떠오른다.

참혹한 전쟁터를 경험한 것은 아니지만 책 제목만 생각해도 파릇파릇했던 군복무 시절로 돌아간다.

깊고 깊은 밤에 초소에서 함께 보초를 섰던 그 후임병은 지금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그 좁은 초소 안에 갇혀서 인생이 썩어가는 것 같은 아쉬움을 달래고 있을 때 바깥의 세상은 “서부전선 이상 무!”를 외치고 있었을 것이다.




에밀리 브론테의 <폭풍의 언덕>을 읽을 때는 세찬 비바람이 부는 날에 어느 언덕 위에 올라가서 고함이라도 지르고 싶은 마음이 일었다.

내 인생에도 폭풍의 언덕과 같은 억센 운명이 도사리고 있는 것 같았다.

그 운명과 일생일대의 치열한 싸움을 한바탕 하고 싶었다.


로버트 프로스트의 시 <자작나무>를 읽을 때는 어린 시절에 친구들과 올라가서 뛰어내렸던 교회 마당의 삼나무 생각이 났었다.

지금은 베어지고 없어졌지만 다시 그런 나무에 올라가서 가지가 휘어지도록 매달리고 싶었다.

그러면 그때의 같이 놀던 친구들도 활처럼 휜 나뭇가지에 달려들 것 같았다.


김용택 선생의 시 <그 여자네 집>을 읽을 때는 노란 은행잎이 비처럼 쏟아지는 가을날이 왔으면 싶었다.

해가 뉘엿뉘엿 저물 때 부뚜막에선 하얀 연기가 피어오르는 그런 집에 한번 들르고 싶었다.

그 집이 누구의 집인지는 모르지만 ‘그 여자네 집’이 될 것 같았다.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를 읽을 때는 망망한 바다 한복판에서 80일 넘게 물고기 구경을 못하고 있는 할아버지와 야구 이야기나 하면서 노닥거리고 싶었다.


김훈 선생의 <하얼빈>을 읽을 때는 이토 히로부미를 처단하러 가는 안중근 의사에게 밥이라도 한 그릇 사 주고 싶었고 감옥에 갇힌 그를 위해 기도라도 한번 해 주고 싶었다.


책이란 참 이상한 물건이다.

숨도 쉬지 않고 움직일 수도 없는 것인데 일단 한 번 손에 잡히면 내 안에 숨을 불어넣고 내 마음을 움직인다.

먼 옛날 할아버지의 할아버지의 할아버지를 만나게도 하고, 어린 시절 소꿉친구를 다시 만나게도 하고, 먼 나라의 낯설고 이름 모르는 사람과 친구가 되게도 한다.

그뿐만 아니라 아직 오지 않은 미래의 내 후손들의 얼굴을 그려보게도 하는 게 책이다.

책을 손에 잡고서 나는 과거를 거닐고 현재를 여행하며 미래를 꿈꾸고 산다.

책이 있어 참 즐거운 인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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