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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은석 Aug 26. 2022

집단지성보다 집단무식을 자랑하면 좋겠다


이스라엘 히브리대학교의 역사학 교수 유발 하라리는 <사피엔스>라는 책에서 사피엔스 종이 인류를 형성하게 된 원인을 아주 재밌게 해석하였다.

사실 사피엔스는 네안데르탈인 같은 부류와 일대일로 싸우면 이길 수 없었다.

체력도 약하고 지능도 약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피엔스가 다른 모든 부류들을 무찌르고 현생 인류의 조상이 될 수 있었던 원인은 사피엔스 만의 비장의 무기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 비장의 무기는 바로 ‘뒷담화’이다.

수다 떨기이다.

수다를 잘 떨었다면 아마 두셋만 모여도 서로 이야기를 먼저 하겠다며 시끄러웠을 것이다.

지능이 약한 존재였으니까 자기가 한 말도 잊어버리고 자기가 하는 말이 무슨 말인지도 모르고 떠들어댔을 것이다.

그런데 말을 많이 주고받다 보니까 정보도 얻게 되었고 새로운 아이디어도 떠올랐다는 것이다.

사피엔스는 그것을 활용해서 다른 부류들을 정복해갔다는 것이다.




사피엔스는 약했다.

약했기 때문에 혼자 힘으로는 살아갈 수가 없었고, 혼자 살아갈 수가 없으니까 서로 모여서 집단을 이루며 살아갔다.

그 집단 속에는 온갖 시끌벅적한 이야기들이 나돌았고 그 수많은 이야기들을 짜 맞추다 보니까 괜찮은 정보가 생겨난 것이다.

그 정보의 힘으로 사피엔스는 지구에서 최고로 강한 존재가 되었다.

만약 사피엔스가 처음부터 힘이 세거나 지능이 발달한 강한 존재였다면 아마 오래 못 가서 멸종되었을 것이다.

동물의 왕이라고 하는 사자나 호랑이를 보면 알 수 있다.

강한 자들의 운명은 굵직한 것 같지만 짧다.

자신이 왕이라며 자신의 영역을 표시하고 그곳에는 아무도 들어오지 못하게 한다.

새끼들도 어느 정도 장성하면 다 내쫓아버린다.

그러니 언제나 외로운 한 마리의 짐승으로 생을 마감한다.

그러나 사피엔스는 달랐다.

자신을 철저히 약한 존재로 인식하며 길고 긴 삶을 살고 있다.




사피엔스의 생존력은 결국 자신의 약함을 인정하는 데 있었다.

신기하게도 자신이 많이 안다고 하는 사람, 힘이 세다고 하는 사람, 많이 가졌다고 하는 사람들은 동물의 왕처럼 외로운 삶을 산다.

구중궁궐 같은 집을 짓고 떵떵거리며 살지만 그 곁에 다가가서 그들의 말을 들어줄 사람은 별로 없다.

그들에게는 마을도, 이웃도 낯선 단어가 되어 버린다.

너무나 힘이 세서 그 힘을 좀 발휘해야 하는데 발휘할 데가 없다.

그들도 약한 사람들처럼 수다를 떨고 싶고 뒷담화도 하고 싶은데 그렇게 할 수가 없다.

그래서일까?

동양이든 서양이든 한 나라를 호령했던 왕들은 일반 백성들보다 평균적으로 짧게 산 것 같다.

그러니 이제 나의 약점에 대해서 너무 부끄러워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

그 약점 때문에 다른 사람들과 쉽게 어울릴 수 있고, 그 약한 것 때문에 뒷담화를 할 수 있고, 그 약한 것 때문에 더 강해질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요즘 자신들이 마치 대단한 존재인 것처럼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이 보인다.

그들은 자신들과 비슷한 사람들끼리 모여서 나눈 이야기를 ‘집단지성’의 결과물이라고 한다.

그 옛날 사피엔스들이 이 모습을 보았다면 웃기는 이야기라고 할 것이다.

사피엔스가 모이면 집단지성이 되는 게 아니라 집단무식이 되기 때문이다.

그 집단무식 때문에 공동체가 생존할 수 있었고 인류가 발전할 수 있었다.

오히려 똑똑하다고 하는 사람들이 모여서 결정한 것들 때문에 인류가 이 고생을 하고 있는 것이다.

경제가 어려워진 것, 정치가 난장판이 된 것, 전쟁이 일어난 것, 환경 문제가 심각하게 된 것의 배후에는 똑똑한 사람들의 집단지성이 있었다.

무식했으면 이런 일들은 일어나지도 않았을 것이다.

이제 제발 집단지성을 자랑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오히려 연약한 사피엔스의 후손임을 인정하며 집단무식을 자랑할 수 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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