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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은석 Aug 12. 2022

가지고 갈 게 없다면 다 쓰고 가는 게 낫다


고대 역사상 가장 광활한 대지를 정복했던 마케도니아의 알렉산더 대왕은 33세의 젊은 나이에 갑작스레 세상을 떠났다.

그리스 북쪽의 자그마한 나라에서 태어났지만 당시의 사람들이 세상의 전부라고 여겼던 지중해 지역을 차지하고 동쪽으로 페르시아 제국을 물리치고 인도까지 진격하였던 불세출의 영웅이었다.

자신을 제우스의 아들이라고 소개했고 자신의 투구에는 빨간색 깃털을 달아서 적군에게 자신을 잡아보라고 외치며 전장에 뛰어들었다.

고작 4만 명의 군사를 거느리고 페르시아 원정에 나섰지만 60만 대군을 물리치는 엄청난 업적을 쌓았다.

그가 인도를 점령한 후 회군하지 않고 더 동쪽으로 말을 몰았다면 중국 주나라와 한판 전쟁을 벌였을지도 모른다.

그랬다면 후에 중국을 통일한 진시황제의 운명까지 달라졌을 것이다.

어쨌든 알렉산더는 그의 앞을 가로막는 모든 적군을 물리쳤다.

단 한 번의 패전도 없었다.




알렉산더는 전쟁만 잘했던 왕이 아니다.

정치력도 뛰어났다.

정복지의 백성들에게 호감을 안겨주기 위해서 다양한 혜택들을 제공해주었다.

비록 패전했지만 그들의 왕에게 최대한의 예우를 표해주었고 장례식도 성대하게 치러주었다.

정복지의 대표되는 도시를 골라서 대규모 토목공사를 벌였고 그곳을 그리스식의 도시로 만들어주었다.

누가 보더라도 입이 쩍 벌어지는 잘 계획된 도시였다.

건물들이 가지런히 정렬되어 있었고 도서관과 공중목욕탕, 극장 등 엄청난 시설들도 들어서 있었다.

당연히 사람들은 자신도 그런 도시에서 살고 싶은 마음이 들었을 것이다.

알렉산더는 그 새로운 도시에 자신의 이름을 따서 알렉산드리아라는 이름을 붙여주었다.

역사가 바뀌면서 도시의 이름들도 바뀌었지만 이집트 북동쪽에 있는 알렉산드리아는 여전히 그 이름을 유지하고 있다.

파로스의 등대도, 대도서관도 사라졌지만 도시는 남아 있다.




훌륭한 왕은 전쟁도 잘해야 하지만 뛰어난 지식과 지혜도 지녀야 하고 그것을 잘 사용할 줄도 알아야 한다.

솔로몬 왕은 지혜의 왕이라고 하지만 통치 후반에 그 좋은 지혜를 잘 사용하지 못했다.

그래서 그가 죽고 난 후에 이스라엘은 남북으로 나누어지고 만다.

알렉산더도 이미 그런 사실들을 잘 알았을 것이다.

어렸을 때 그를 가르쳐준 선생님이 어련히 알아서 잘 가르쳐주었을 것이다.

그의 선생님은 그 유명한 아리스토텔레스이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선생님은 플라톤이고 플라톤의 선생님은 소크라테스다.

이 정도의 학문적인 족보를 지녔다면 그야말로 말 다한 것이다.

소크라테스가 철학자의 삶을 몸소 보여줬다면 플라톤은 철학하는 자세로 정치를 해야 한다는 것을 알려주었고 아리스토텔레스는 철학을 할 수 있는 귀족들이 정치를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런 대 스승님들의 가르침을 이어받은 사람이 알렉산더 대왕이다.




알렉산더는 자신이 배우고 익힌 문명을 모두에게 나눠주려고 했다.

가장 앞선 문화인 그리스 문화를 정복지에 전달하는 전도자의 역할을 감당했다.

그 덕분에 헬레니즘 문화가 전 세계에 뻗어나갈 수 있었다.

하지만 이렇게 온 천하를 다 얻은 것 같던 알렉산더였지만 서른세 살의 젊은 나이에 죽음을 맞이했다.

그가 죽기 전에 신하들에게 자신의 관에 구멍을 뚫어서 두 손을 관 밖으로 나오게 하라고 부탁했다는 말은 유명하다.

우리가 세상에 올 때 아무것도 가지고 온 것이 없듯이 세상을 떠날 때도 아무것도 가지고 갈 게 없다는 것을 보여주라는 것이다.

그 유언이 사실인지 아닌지는 중요하지 않다.

가지고 갈 게 없다면 다 쓰고 다 나눠주고 가는 게 낫다.

꼭꼭 숨겨두었다가 녹슬어서 버리는 것보다 실컷 써서 닳고 닳아서 없어지는 게 낫다.

다 태워서 재가 되는 게 낫다.

알렉산더는 갔지만 도시가 남았듯이 문명이 남았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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