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들이지 않고 천천히 하는 게 실력이다
처음 강단에 서는 후배들에게 들려주는 이야기가 있다.
자연스럽게 하라는 말이다.
틀려도 틀린 것을 티 내지 말고 얼굴 표정을 자연스럽게 하라고 한다.
말이 꼬이거나 할 때는 일부러 말을 천천히 하라고 한다.
회중들 몰래 심호흡을 크게 하고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말을 하면 그 상황을 모면할 수 있다고 조언해 준다.
극장에서 연기를 하는 배우들을 보면 완벽한 연기를 하는 순간보다 대사나 행동의 실수가 있을 때가 많다.
하지만 회중들은 배우들의 연기가 잘못된 것을 잘 알지 못한다.
배우의 표정이 갑자기 어색하게 변할 때가 되어서야 ‘뭔가 잘못됐구나!’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노련한 배우들은 자신의 연기가 틀렸어도 틀리지 않은 척 자연스럽게 넘어간다.
흔히 말하는 애드립을 활용한다.
애드립을 구사하는 순간은 참 어색하다.
하지만 그 어색한 순간을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넘어가는 것이다.
그게 고수들의 실력이다.
그런데 애드립을 구사하고 싶어도 초짜들은 잘되지 않는다.
오히려 애드립을 구사하려다가 더 크게 실수하기도 한다.
애드립도 실력이기 때문이다.
고수들에게 물어보면 대답은 한결같다.
어떻게 그 상황에서 그렇게 자연스러운 대사와 행동이 나오냐고 물어보면 그냥 그렇게 했다고 한다.
어느 분야에서 일가견이 있는 장인들에게 물어볼 때도 같은 대답이 나온다.
어떻게 그렇게 잘하냐고 하면 그냥 그렇게 했는데 그렇게 되었다고 한다.
TV 프로그램에서 종종 등장하는 생활의 달인들을 보면 옆에서는 감탄사가 쏟아지는데 정작 달인들은 심드렁하게 일을 한다.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특별한 일도 아니라는 듯이 척척 일을 한다.
칼질을 하면 가지런히 잘리고 물건을 던지면 가야 할 위치에 정확하게 가서 떨어진다.
달인의 얼굴 표정을 보면서 이게 별것 아닌 일인 것 같아서 옆에서 도전해 보지만 달인처럼 성공하지 못한다.
달인과 초짜의 차이점이 여러 가지가 있지만 한눈에 알 수 있는 모습은 힘의 차이이다.
달인은 힘들이지 않고 쉽게 하는데 초짜는 잔뜩 힘을 들이면서 어렵게 한다.
탁구나 테니스 같이 일대일로 하는 경기를 보면 대번에 드러난다.
고수들은 힘들이지 않고 쉽게 쉽게 받아넘긴다.
별로 뛰어다니지도 않고 땀도 흘리지 않는다.
라켓도 아무렇게나 휘두르는 것 같은데 정확한 위치에 공이 떨어진다.
반면에 하수들은 힘껏 치면서 부지런히 뛰어다닌다.
팔과 손목의 각도를 유지하면서 혼신의 힘을 다해 라켓을 휘두르는데도 홈런볼이 많이 나온다.
20분만 뛰어도 땀이 비 오듯이 흘러내린다.
혼자서 운동을 다한 것 같은 티를 낸다.
혹시 코트에서 이런 선수를 보면 그 선수가 하수라고 생각해도 될 것이다.
그래서인지 일정한 수준에 도달하면 그다음부터는 힘을 빼는 훈련을 하라고 한다.
힘들이지 않고 해결하는 게 실력이다.
강의든 연기든 운동이든 연주든 힘들이지 않고 자연스럽게 하는 게 관건이다.
자칫 대충대충 하는 것 같아 보일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마치 중국 무협영화에서 술에 취한 할아버지처럼 쓰러질 듯 말 듯하면서 공격하는 ‘취권’ 같은 것이다.
엉성해 보이지만 대단한 내공이 쌓인 것이고 엄청난 힘을 지닌 것이다.
이탈리아 사람들은 일찌감치 이런 실력을 알아보았던 것 같다.
그래서 아예 그런 말을 만들어냈다.
스프레차투라(Sprezzatura)라는 말이다.
‘힘들이지 않고 천천히’라는 뜻을 지니는 말이다.
사실 이 단어에는 ‘경멸’, ‘멸시’의 뜻도 있다.
경멸받고 멸시받을 만큼 엉성한 동작인데 다시 한번 돌아보면 대단한 일을 해내는 것이다.
굉장히 어려운 일인데 무척 쉬운 일처럼 해내는 것이다.
얼굴 표정 하나 변하지 않고 말이다.
나는 고수들의 실력에는 못 미치더라도 그들의 얼굴 표정만이라도 따라가야겠다.
스프레차투라(Sprezzatura)!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