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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은석 Aug 24. 2022

묘비문을 보면서 어떻게 살아야 할지 생각해 본다


한 사람의 일생을 단 몇 글자로 소개하는 글이 있다면 묘비문이 아닐까 싶다.

우리의 전통적인 묘비문은 그가 언제 태어나서 언제 별세했는지, 가문은 어떤지, 자손들은 몇이나 되는지, 관직은 무엇이었는지 적는다.

그 후에 그가 행한 특별한 일들을 기록한다.

현대에 와서는 묘비문이 단출해졌다.

족보 이야기도 더 이상 자랑거리가 아니다.

조선시대는 사대부 중심의 사회였으니까 관직의 등급이 중요했겠지만 지금은 직업의 귀천이 없는 사회이기에 직급을 적지도 않는다.

관직 외에도 직업이 엄청 많아졌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러다 보니까 묘비에 막상 적을 내용이 없다.

옛날처럼 자식을 많이 낳는 시대도 아니니까 한두 명의 이름을 적으면 더 적을 내용도 없다.

그래서인지 요즘은 묘비에 고인이 평소에 좋아했던 좋은 문장이나 유족들의 마음을 담은 글귀를 적기도 한다.

기독교인들은 성경 구절을 적기를 좋아한다.     




서양인들의 묘비문도 우리와 크게 다르지는 않다.

단지 개인주의와 합리주의가 강한 서양인들의 특성인지 묘비문도 독특한 글귀들이 많다.

그중에는 고인이 살아 있었을 때 자신의 묘비에 이런 글을 적어달라고 부탁한 내용들도 많다.

고인의 평상시에 많이 언급했던 말이나 고인이 남긴 명언을 적기도 한다.

특히 세간에 명성이 자자했던 사람들일수록 자신의 묘비에 무슨 글을 적을까 고민을 많이 했던 것 같다.

묘비문은 고인이 두고두고 후손들에게 영향력을 끼치는 수단이 되기 때문이다.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는 말을 서양 사람들도 알고 있었던 것이다.

살아서 자신의 이름이 불리는 시간은 고작 100년이지만 죽은 후에는 천년만년 자신의 이름이 불릴 수 있기 때문에 그 이름에 따라오는 표현들도 소중히 여겼다.

그래서 능력만 된다면 자신의 묘비문을 직접 기록하고 싶었던 것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위인들의 묘비문을 찾아보려는 사람들도 꽤 많다.

그들의 노력에 의해서 유명한 묘비문들이 세간에 알려졌다.

영국의 극작가인 조지 버나드 쇼의 묘비에는 

‘우물쭈물하다가 내 이럴 줄 알았다.’

라는 글이 새겨져 있다.

죽어서까지도 살아 있는 사람들에게 촌철살인과 같은 가르침을 주고 있다.


<그리스인 조르바>의 작가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묘비에는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다. 아무것도 두렵지 않다. 나는 자유다.’

라는 글이 새겨져 있다.

소설 속 주인공 조르바처럼 끝없는 자유를 추구했던 작가의 모습을 보는 것 같다.


시인 조병화 선생의 묘비문에는 

‘나는 어머님 심부름으로 이 세상에 나왔다가 이제 어머님 심부름 다 마치고 어머님께 돌아왔습니다.’

라고 적혀 있다.

시인의 감성은 역시 다르다는 느낌이 든다.

묘비문을 읽는 순간 ‘맞다! 맞아!’ 공감이 된다.

어머니의 목소리까지도 들리는 듯하다.     




묘비문들을 읽는 것은 단순히 좋은 경구를 얻기 위함이 아니다.

한 시대를 풍미하다가 떠난 이들에게서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배우기 위함이다.

그런 면에서 <적과 흑>, <파르마의 수도원>을 쓴 프랑스 작가 스탕달의 묘비문은 나에게 큰 울림을 주었다.

그의 묘비에는 

‘살았다. 썼다. 사랑했다.’

라는 문장이 새겨져 있다.


삶을 사는 것은 모든 태어난 자들의 사명이다.

스탕달은 생이 다하는 날까지 꿋꿋하게 살았다.

쓰는 것은 스탕달의 일인데 직업으로서 그의 사명이었다.

스탕달은 생이 다하는 날까지 쓰기를 멈추지 않았다.

사랑하는 것은 사람으로서 다른 사람에 대한 사명이다.

세상 모든 사람에게는 다른 사람을 사랑해야 하는 사명을 가지고 있다.

스탕달은 누구보다도 열심히 사랑하며 살았다.

스탕달에게 물어보지는 못했지만 그는 자신의 인생을 사명으로 받아들이고 그 사명을 완수하기 위해 최선을 다해 산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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