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이 요동을 치니 마음이 편할 리가 없다.
생각해보면 어제오늘의 이야기가 아니다.
늘 그래 왔다.
어렸을 때는 어른이 되면 살기 좋을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스무 살 성인이 되었어도 여전히 마음은 뒤숭숭했다.
그래서 서른이 되면 괜찮지 않을까 생각했었다.
서른이 되었을 때는 마흔, 마흔이 되었을 때는 쉰.
그렇게 매 순간마다 조금만 지나면 나아질 것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슬슬 걱정이 되었다.
곧 괜찮아질 거라는 생각보다 여기서 더 안 좋아질 것 같은 생각이 많아졌다.
전에는 내가 세상에서 제일일 줄 알았는데 요즘은 스쳐 지나가는 사람들도 나보다 괜찮게 보인다.
이제 조금만 지나면 아버지가 천국으로 갈 때의 나이만큼 먹게 된다.
아버지는 6남매의 자녀도 키우셨는데 나는 두 남매도 버거워한다.
남들 앞에 내세울 것도 없고 이루어 놓은 것도 없고 모아둔 것도 없다.
그런데 세상이 흔들린다.
자신만만하게 달려왔던 시간들이 있었다.
한껏 능력을 뽐내고 세상을 앞서간다고 생각도 했었다.
그러나 얼마 전부터 발걸음을 천천히 옮기고 있다.
빨리 달려가 봤자 더 나을 것이 없는 것 같기 때문이다.
만약에 저 앞에 정말 좋은 것이 있다면 빨리 가서 그것을 잡으려고 할 것이다.
그러나 저 앞에 좋아 보이는 것들이 신기루인 것 같다.
여태껏 그런 일이 많았다.
그래서 지금도 못 믿는 것이다.
일찍 일어나는 새가 벌레를 잡는다는 가르침에 순응하면서 살아왔다.
그렇게 부지런히 살다 보면 언젠가 더 나은 세상을 차지하게 될 줄 알았다.
그러나 내가 살아가는 세상은 늦게 일어나는 사람이 오히려 더 잘 되고 잘 먹고 잘사는 것 같다.
괜히 일찍 일어나려고 부산을 떨다 보니 몸도 마음도 지칠 뿐이다.
일찍 일어난 새가 포수에게 더 잘 잡힐 수도 있다.
차라리 남들처럼 푹 자고 천천히 일어나는 게 더 나았는지 모른다.
예전에는 좀 괜찮게 사는 사람들은 아침밥을 잘 안 먹었다고 한다.
해가 중천에 떠오를 때까지 침상에 누워 있다가 아침 겸 점심으로 한 끼 식사를 하고 저녁에는 거하게 또 한 끼 식사를 했다고 한다.
반면에 아침부터 부지런히 일을 해야 하는 사람들은 일찍 일어나서 아침밥을 먹고, 땀 흘려 일하느라 체력이 고갈되니까 점심밥을 먹고 또 집에 돌아가서 저녁밥을 먹었다고 한다.
그뿐만 아니라 식사와 식사 사이에 새참도 먹었다.
그러니까 밥을 많이 먹는 사람은 일을 많이 하는 사람이라는 등식이 성립되었던 시절도 있었다.
그런 사회에서는 아침에 일찍 일어나라는 소리가 오히려 저주하는 말이 되었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축복하는 말을 하려면 아침에 늦잠 잘 수 있는 사람이 되라고 해야 했을 것이다.
잔소리도 시대를 잘 파악해서 해야 한다.
오늘 맞다는 것이 내일 틀릴 수도 있다.
무엇을 기준으로 삼아야 할지 모르겠다.
이 뒤틀린 세상, 기준이 모호한 세상 말고 정말 좋은 세상을 꿈꿨었다.
1516년 영국에서도 나처럼 새로운 세상을 꿈꿨던 사람이 있었다.
그는 그 나라를 ‘유토피아(Utopia)’라고 이름 붙였다.
어떤 사람들은 그 나라가 실제로 존재한다며 찾아 나서기도 했지만 사실 작가인 토마스 모어가 이름 붙인 유토피아는 이 지구상에 있던 나라가 아니다.
‘유(U)’는 ‘없다(Ou)’ 혹은 ‘좋다(Eu)’라는 뜻이고, ‘토피아(topia)’는 ‘장소’라는 뜻을 지닌다.
그러니까 유토피아는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 곳’이면서 또한 ‘너무나 좋은 곳’이다.
그곳은 여기에 있다거나 저기에 있다거나 할 수가 없다.
일평생 우리가 찾고 찾아도 못 찾을 수 있다.
하지만 너무나 좋은 곳이다.
어쩌면 너무 멀리까지 찾으러 가지 않아도 찾게 될 것이다.
그곳은 생각보다 쉽게 발견할 수 있을 테니까 말이다.
바로 지금, 이곳이 내가 그토록 찾았던 나의 유토피아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