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울 수는 없어도 덧칠할 수는 있는 인생이다

by 박은석


쓰레기 분리배출을 하다 보면 ‘이런 것도 있었나?’ 싶은 물건들이 많이 나온다.

어디에 쓰는 물건일까 궁금증을 야기하는 것들, 고물상에서나 볼만한 오래된 물건들, 아이들의 장난감에서부터 덩치가 큰 가전제품까지 신기방기한 물건들이 참 많다.

도대체 이런 물건들은 누가 만들었을까 궁금해진다.

비록 지금은 쓰임새가 다하여 버려졌지만 그것들을 처음 얻게 되었을 때는 매우 요긴했을 것이다.

그것들을 만든 사람이 누구인지는 모르지만 엄청나게 고민하였을 테고 숱한 시행착오를 겪었을 것이다.

인간은 조물주를 닮아서 그런지 무엇인가를 만들어내고 그 만든 물건을 이용해서 또 다른 새로운 것을 만든다.

창조의 연결고리를 하나씩 하나씩 끊임없이 이어간다.

이렇게 항상 무언가를 만들고 그 만든 물건을 사용하여 또 다른 무언가를 만들어내기 때문에 인간은 호모 파베르(Homo Faber, 도구적 인간)라는 별명을 얻게 되었다.




오랜 옛날의 돌도끼에서부터 오늘날의 최첨단 로봇에 이르기까지 인간이 만들어낸 것들은 엄청나게 많다.

그런데 그 많고 많은 물건들 중에서 가장 탁월하고 위대한 발명품은 무엇일까?

이런 질문이 나오면 사람마다 입장이 다르기에 난상토론이 이어질 수 있다.

수레바퀴의 발명은 물레방아, 바퀴, 도르래, 마차, 자동차, 비행기 등 산업기술의 비약적인 발전을 이룰 수 있게 하였다.

전깃불과 전기동력의 발명으로 인간은 밤을 정복하고 에너지혁명을 이룰 수 있었다.

의학적으로는 페니실린의 발견과 항생제의 탄생을 최고로 치기도 한다.

그로 인해 못된 질병과 싸워 이길 수 있었고 인간의 평균수명이 엄청 늘어났다.

세탁기의 발명은 가사노동에 묶여 있던 여성들의 짐을 덜어주었고 그 시간에 다른 일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주었다.

그런가 하면 세라믹 변기의 등장은 화장실을 집 안으로 들여오게 하는 혁신을 이끌어내었다.




수학에서는 숫자 ‘0’의 개념을 만들어낸 것을 최대의 업적으로 본다.

숫자 0의 등장으로 수 개념이 무한대로 늘어날 수 있었다.

글자에 관해서는 세계 여러 나라의 문자가 있지만 그중에서도 분명한 목적을 가지고 가장 과학적으로 만든 우리의 ‘한글’을 최고의 작품으로 본다.

이렇게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발명품이 무엇인가를 가려내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우리가 누리고 있는 모든 것들이 사실은 위대한 발명품들이었다.

좀 엉뚱한 것 같지만 어떤 사람들은 문구점에서 쉽게 구입할 수 있는 지우개를 가장 위대한 발명품이라고 한다.

사람들은 자신의 마음에 떠오르는 기발한 생각들을 글로 기록하고 그림과 설계도로 그리는데, 순간순간 고치고 없애버려야 하는 상황들이 굉장히 많았다.

그때 지우개가 있었기 때문에 지우고 수정하고 고쳐서 위대한 문명의 발전을 이루게 되었다는 것이다.

너무나 공감이 가는 말이다.




지금은 거의 모든 작업을 컴퓨터에서 처리하지만 예전에는 종이에 연필로 쓰고 그리면서 했다.

그러니 설계도, 그림, 악보, 원고지 등 무슨 작업을 하든지 지우개가 필수품이었다.

어떤 가수는 사랑을 뜰 때도 연필로 쓰라고 했다.

틀리거나 잘못되면 지우개로 깨끗이 지울 수 있다고 노래했다.

정말 그렇게 지울 수가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사랑뿐만 아니라 우리가 살아가면서 실수로 내뱉은 말이나 잘못된 행동들도 지울 수 있다면 괜스레 가슴앓이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그런데 우리의 인생에는 지우개가 없다.

한 번 선을 긋거나 그림을 그리면 지울 수가 없다.

없었던 일로 할 수가 없다.

그러니까 신중하게 생각해서 잘 쓰고 잘 그려야 한다.

그렇다고 너무 겁먹을 필요는 없다.

인생을 싹 지울 수는 없지만 그 위에 덧칠할 수는 있다.

실수하고 잘못한 그 자리에 더 멋들어진 글을 쓰고 더 아름다운 그림을 그릴 수도 있다.

지울 수는 없어도 덧칠할 수는 있는 인생이다001.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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