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은석 Sep 04. 2022

사람은 처음부터 끝까지 듣는 존재이다


몸이 너무 피곤해서 책상 앞에 너부러져 있었다.

마치 넋이 나간 모습이다.

이렇게 맥없이 앉아 있다 보면 기운이 돌아오기도 한다.

물론 깊이 잠들어 버릴 수도 있다.

지친 몸을 쉬게 할 때는 살짝 음악을 틀어 놓는 것도 좋다.

너무 조용한 분위기보다 살짝 소리가 들리는 분위기가 더 편안하다.

역시 쉴 때는 클래식 음악이 제격이다.

폼나게 베토벤의 교향곡을 골랐다.

그것도 카라얀이 지휘하는 연주회 음악이다.

솔직히 교향곡 5번 <운명>의 첫 부분처럼 잘 알려진 부분을 제외하고는 저 음악이 무슨 음악인지 잘 모른다.

내가 클래식 음악에 조예가 깊지 않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클래식 음악을 틀어 놓는다.

계속 듣다 보면 언젠가는 귀에 익숙해질 것을 믿기 때문이다.

귀에 익숙해지면 그다음에는 그 음악을 나 혼자서 나름대로 해석할 수도 있게 될 것이다.

물론 그 정도의 경지에 이르기까지는 수없이 들어야 한다.




언젠가 음악을 전공하는 대학생에게 물어본 적이 있다.

어떻게 하면 딱 듣는 순간 그 음악의 작곡가가 누군지 그리고 무슨 곡인지 알 수 있느냐고.

그랬더니 그 친구가 하는 말이 계속 듣다 보면 알 수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라디오의 클래식 채널을 계속 들어보라고 했다.

하기는 요즘 활동하는 아이돌 가수들이 누구며 어떤 노래들이 아이들에게 인기가 있는지 나는 모른다.

딸내미와 아들내미가 흥얼거리는 노래가 무슨 노래인지 나는 모른다.

왜냐하면 내가 그 노래들을 들은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만약 내 아이들처럼 그 노래들을 계속 들었다면 나도 그 노래에 흠뻑 빠져들었을 것이다.

그러니까 우리가 무엇인가를 안다는 것은 결국 듣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

잘 들어야 잘 알 수 있다.

그래서 어렸을 때 내 부모님은 나에게 잘 들으라고 하셨다.

학교에 가면 선생님 말씀 잘 듣고 교회에 가면 목사님 말씀 잘 들으라고 하셨다.




조물주가 사람을 만들면서 입은 하나인데 귀를 두 개 만든 이유가 있다면 말하는 시간보다 듣는 시간을 두 배나 많이 가지라는 뜻에서 그랬다고 한다.

우스갯소리이지만 깊이 새겨들을 필요가 있는 말이다.

말을 잘하는 사람보다 잘 듣는 사람이 더 성공적인 인생을 살 수 있다.

한 나라의 지도자로 선출된 사람이라면 일단은 굉장히 똑똑하고 능력이 많은 사람이다.

그러나 어떤 지도자라고 하더라도 자기 생각대로만 일을 처리하지는 않는다.

백성들의 눈치를 본다.

지도자들에게 가장 필요한 덕목은 백성들의 목소리를 잘 듣는 것이다.

말하기를 좋아하면 반드시 실수를 하게 되지만 듣기를 좋아하면 실수할 일이 거의 없다.

사람들은 말 잘하는 사람을 좋아하는 것 같지만 사실은 듣기를 잘하는 사람을 좋아한다.

나에게 좋은 말을 많이 해주는 사람보다 별 영양가 없는 말이지만 내 말을 잘 들어주는 사람을 더 좋아한다.




사람에게 듣는 일은 생명이 주어진 순간부터 시작된다.

어머니 뱃속에 갇혀서 아무 소리도 낼 수 없지만 배 밖에서 들리는 소리를 들어왔다.

과학적인 증명이 시도되기 훨씬 전인 우리 할머니의 할머니의 할머니 적부터 태교가 중요하다고 한 이유가 있다.

뱃속의 태아가 듣고 있기 때문이다.

세상에 태어난 아기가 제일 먼저 하는 일도 듣는 일이다.

우는 일이 아니라 듣는 일이다.

자신을 세상에 내보내려는 어머니의 목숨을 건 신음소리를 듣고, 의사와 간호사들의 긴장된 소리를 듣는다.

태어난 후로도 오랜 시간 동안 듣기만 하다가 드디어 자기 목소리를 낸다.

한평생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을 실컷 하고 사는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한평생 온갖 소리를 들으며 산다.

그러다가 생이 다하는 순간에는 조용히 누워서 자신을 위해서 기도하는 이들의 목소리를 들으며 눈을 감는다.

사람은 처음부터 끝까지 평생 듣는 존재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우물 파기 사역을 소개합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