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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은석 Sep 06. 2022

인생살이는 통째로 준비하는 시간이다


태풍의 영향권이 매우 넓어서 조심해야 한다는 방송을 1주일 넘게 들은 것 같다.

관리사무소에서는 베란다의 유리창이 깨지지 않도록 대비를 하라고 연신 방송을 했다.

제발 집 밖으로 나다니지 말고 안전한 곳에서 나오지 말라고 했다.

비가 억세게 많이 내렸다.

무서울 정도였다.

이제 거대한 바람이 몰려올 것이라고 생각했다.

집 앞의 먹자골목도 여느 때와는 달리 조용한 저녁을 보냈다.

조마조마하게 기다리다가 잠이 들었는데 밤사이에 태풍이 지나갔다.

내가 살고 있는 지역에는 아무런 피해가 없었다.

아침에 햇빛 찬란한 하늘을 보니 반갑기도 하면서도 뭔가 모를 허탈감이 들었다.

‘이번에도 속았다!’는 마음이 드는 것은 나만의 감정일까?

그렇지 않을 것이다.

기상청이 설레발을 쳤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은근히 많을 것 같다.

역대급 태풍이라고 했는데 우리 동네에는 아무런 상처도 남기지 않고 지나갔으니 말이다.




기상청이 또 뻥쳤다고 할 수 있을까?

그렇지 않다.

실제로 태풍이 지나간 지역은 너무나 큰 피해를 입었다.

온 국토가 그런 피해를 입어야만 기상청의 일기예보가 제대로 되었다고 할 수 있는가?

오히려 기상청에서 조심하라고 난리를 치니까 온 국민이 조심했고, 태풍에 대비해서 나름대로의 준비들을 하다 보니까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었던 것은 아닐까?

만약 아무런 준비도 없는 상태에서 이런 태풍을 만났다면 그 결과는 끔찍했을 것이다.

심각한 인명과 재산의 손실을 입었을 것입니다.

태풍의 위력이 약해져서 피해가 적었던 게 아니라 우리가 준비를 철저히 했기 때문에 피해를 줄일 수 있었던 것이다.

자연재해를 당해낼 인간은 없지만 그 피해를 최소화할 수는 있다.

어떻게 얼마만큼의 준비를 하느냐에 따라서 피해의 강도가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옛 어른들이 강조하셨던 유비무환(有備無患)의 정신은 여전히 효력이 있다.




서애 류성룡이라는 인물은 조선 선조 임금 당시에 영의정의 자리에까지 올랐었다.

그는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별로 알려지지도 않았던 군인 한 명을 전라도 해군을 총지휘하는 전라좌수사로 추천하기도 했다.

물론 주위의 많은 신하들이 반대를 했지만 그는 그 반대의 목소리들을 다 잠재웠다.

그렇게 류성룡으로부터 추천받은 인물이 바로 이순신 장군이다.

이처럼 지식도 많고, 정치력도 강하고, 사람 보는 눈도 탁월했던 류성룡이 임진왜란의 참상이 어땠는지 낱낱이 기술한 <징비록(懲毖錄)>이라는 책이 있다.

이 책에 임진왜란이 왜 일어났는지 그 원인을 밝히는 대목이 나온다.

세종대왕 이후 100년 넘도록 태평성대를 누리고 있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나라가 너무 안정되었기 때문에 전쟁에 대한 대비가 없었다는 것이다.

그는 이제 전쟁이 끝난 마당에 어떻게 해야 하겠느냐고 묻고 있다.

그 대답은 앞으로 잘 준비하라는 것이다.




전쟁과 같은 국가의 중대한 문제뿐만 아니라 우리가 살아가면서 겪게 되는 모든 일에는 준비가 필요하다.

준비 없이 어떤 일을 맞닥뜨리면 당황하게 되고, 잘못 처리하여 사고가 나고, 몸에 무리가 오고 마음이 다칠 수 있다.

그 사실을 본능적으로 알기에 우리는 늘 준비하라는 말을 한다.

밥 먹을 준비를 하고, 운동할 준비를 하고, 공부할 준비도 한다.

학교 갈 준비를 하고 출근할 준비를 하고 사람 만날 준비도 한다.

명절이 다가오면 명절 준비를 하고 결혼식날이 다가오면 결혼식 준비를 하고, 출산일이 다가오면 출산 준비를 한다.

심지어는 안방에서 텔레비전 드라마를 볼 준비도 하고 극장에서는 영화를 볼 준비를 한다.

준비 없이 진행되는 일을 찾아보기는 쉽지 않다.

어떤 사람은 평생 준비만 하다가 시간을 다 보냈다고도 한다.

그런데 준비를 했으니까 별 탈 없이 올 수 있었던 거다.

인생살이는 통째로 준비하는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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