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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은석 Sep 08. 2022

오늘 우리 팀은 희생하지 못해서 졌다


야구 경기를 보러 갔다.

내가 응원하는 팀이 먼저 점수를 얻어서 굉장히 기분이 좋았다.

팽팽한 승부가 이어지고 있었는데 다시 기회가 왔다.

무사 주자가 1루와 2루에 들어섰다.

타석에는 타율이 3할을 넘는 타자가 들어섰다.

3번 중의 한 번은 안타를 칠 수 있는 선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번트 시도를 했다.

보내기번트다.

희생번트라고도 한다.

자신은 아웃을 당하지만 주자들을 한 베이스 앞으로 보내는 번트다.

타자로서는 모처럼의 기회이니까 자신의 실력을 발휘해서 안타를 치고 싶을 것이다.

그러나 감독의 생각은 다르다.

3분의 1의 안타 칠 확률을 택하지 않고 타자에게 희생하라고 사인을 준다.

타자는 감독의 사인에 따르려고 시도했다.

하지만 보내기 번트 실패다.

그것도 애꿎은 2루 주자가 아웃당했다.

희생번트를 댔는데 타자가 희생되지 않았다.

‘나 살았다!’고 좋아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야구가 그렇다.




오늘 내가 응원하는 팀은 두 번의 주자 1, 2루 기회가 있었다.

그런데 두 번 다 보내기번트에 실패했다.

순식간에 아웃 카운트가 늘어났고 그만큼 점수를 얻을 기회는 멀어져 갔다.

결국 9회말에 역전패를 당하고 말았다.

선수들은 락커룸에 들어가서 분명히 오늘의 경기를 복기해볼 것이다.

도저히 질 것 같지 않은 경기였는데 졌다.

충분히 이길 수 있는 경기였는데 이기지 못했다.

그 원인이 무엇인지 생각하다 보면 두 번의 희생번트 실패가 떠오를 것이다.

그때 타자가 희생되었다면 이겼을 텐데 타자가 희생되지 못했다.

그래서 두고두고 아쉬운 경기가 되고 말았다.

시즌 막바지를 향해서 가고 있어서 한 경기 한 경기의 승패에 따라서 순위가 결정될 수 있다.

시즌이 끝나고 나면 ‘그때 그 경기를 잡았어야 했는데...’라는 아쉬움이 남는 경기가 있다.

그런 경기가 바로 오늘의 경기였다.

다 이겼다고 생각했는데 지고 말았다.




야구 경기에서 공격하는 팀의 라커룸 분위기를 보면 선수가 점수를 얻고 돌아왔을 때 엄청 반긴다.

홈런이라도 치며 난리가 난다.

그런데 아웃을 당하고 들어오는 선수에게는 라커룸에서도 별로 반응을 보이지 않는다.

그러잖아도 아웃되어서 기분이 상한데 누가 아는 척이라도 하면 더 쑥스러울 것 같아서 그러는 것 같다.

하지만 아웃을 당하고 들어오는데도 라커룸에서 환영을 받을 때가 있다.

마치 멀리 홈런을 친 것처럼 격하게 환영을 받는다.

그게 어떤 때냐면 바로 희생번트를 성공시켰을 때다.

희생플라이를 쳐서 자신은 아웃당했지만 3루에 있었던 동료가 홈 베이를 밟아서 점수를 얻었을 때이다.

어떤 때는 희생번트와 희생플라이로 경기를 마무리짓기도 한다.

타자가 아웃당하는 일이니까 쉬운 일이라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희생번트와 희생플라이는 고난이도의 기술을 필요로 하고 굉장한 담력을 필요로 하는 실력이다.




나는 정말 많이 희생했다고 하는데 아무도 나의 희생의 대가를 얻지 못했다면 그건 희생이라고 할 수 없다.

그건 희생이 아니라 손해이고 손실이다.

그래서 희생이 어려운 일이다.

희생은 나를 죽이고 다른 사람을 살리는 일이다.

그러니까 내가 죽어야 한다는 전제가 있어야 하고 또한 다른 사람이 살아야 한다는 결과도 있어야 한다.

산모가 아기를 낳는 과정을 희생이라고 하는 이유는 산모가 자신의 목숨을 걸고 아기를 낳으려고 하기 때문이다.

자신은 죽이고 아기는 살리려고 하는 순결한 희생이다.

이런 희생이 있기 때문에 사람이 살게 되고 세상이 유지되는 것이다.

희생이 없이는 생명도 없고 세상도 없다.

나름대로 번지르르하게 잘 사는 것 같지만 지금의 내가 있기까지는 여러 사람들의 희생이 있었다.

그러니까 나는 희생을 먹으면서 성장해온 것이다.

그런 내가 이제는 다른 사람을 위해 희생해야 하는데... 참 갑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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