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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은석 Sep 10. 2022

행복은 나에게서 시작해서 나에게서 끝난다


<서부전선 이상 없다>라는 작품으로 잘 알려진 레마르크는 2차 세계대전 직전의 프랑스 파리를 배경으로 한 <개선문>이라는 책도 썼다.

개선문은 전쟁에서 승리한 것을 기념해서 세운 문인데 이 소설에서는 승리의 함성은 들리지도 않는다.

매일 개선문 곁을 지나가지만 점점 전쟁에서 패배할 것 같은 분위기가 거세지는 것 같다.

나치 히틀러에 반대하여 파리로 도망쳐온 라비크는 여권도 비자도 없는 불법체류자이다.

자신의 동료 및 애인과 함께 정치범으로 체포되어 가혹한 고문을 당하던 중에 애인은 스스로 목숨을 끊었고 그는 기적적으로 탈출하여 파리로 숨어 들어온 것이다.

그는 전직 의사였기에 파리에서 불법 의술을 행하며 생활한다.

자기를 고용한 의사가 환자를 마취하면 그가 몰래 들어가서 수술하고 그 대가로 돈을 받는다.

그러던 어느 날 라비크는 개선문 근처에서 정신을 잃고 쓰러지는 한 여인을 만나게 된다.




어쩔 수 없이 그녀를 도와주게 된 라비크는 점점 그녀에게 빨려 들어간다.

그녀의 이름은 조앙이다.

오래전부터 가수의 꿈을 키워오고 있었다.

하지만 상황이 허락지 않았고 여러 남자를 만나고 헤어지면서 사랑에도 많이 실패하였다.

새 삶을 찾아 파리에 들어왔지만 아는 사람 한 명 없는 파리에서 애인은 병에 걸려 죽고 만 것이다.

얼떨결에 라비크는 그녀 애인의 장례식을 도와주게 되었고 그녀의 몸과 마음도 치유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녀가 노래 부를 수 있는 곳도 알선해 주었다.

이런 과정들을 겪으면서 조앙은 라비크를 사랑하게 된다.

하지만 라비크는 선뜻 자신의 마음을 열지 않는다.

그도 분명히 조앙을 사랑하는 것 같다.

하지만 고백하지 않는다.

아마 사랑을 책임질 수 없기 때문일 것이다.

일단은 숨어 지내는 자신의 신분이 너무 불완전했다.

그리고 전쟁의 기운이 몰려오는 시대적 분위기도 한몫했을 것이다.




라비크의 반응과는 상관없이 조앙은 라비크와 함께 있기만 하면 너무 행복했다.

혹 라비크가 자신을 귀찮아할 때가 올 수도 있으니까 그런 마음이 들면 자신에게 말해달라고도 했다.

그러자 라비크는 그러겠다고 대답했다.

그 말은 곧 지금까지는 조앙을 귀찮아하지 않고 있었다는 뉘앙스가 들어있다.

조앙은 그 느낌을 간파했다.

그리고 자신은 지금 행복하다고 했다.

라비크는 행복이라는 말을 생각해본 적도 없었는지 행복이라는 말을 함부로 해서는 안 된다고 했다.

행복이 도대체 어디에서 시작해서 어디에서 끝나는 것인지 궁금하다고 했다.

라비크뿐만 아니라 세상 모든 사람이 가지고 있는 질문이다.

행복을 찾으려면 어디로 가야 하는지 궁금해한다.

이 질문에 조앙은 아주 간단하게 대답을 했다.


“행복은 당신에게서 시작하고 당신에게서 끝나는 거예요.”


아! 그런 거였다.

행복은 멀리 있는 게 아니라 내 안에 있는 거였다.




라비크는 평생 행복을 꿈꿔왔을 것이다.

하지만 나치로부터 자신의 인생을 도둑맞고 애인이 목숨을 잃은 후에는 행복을 포기해버린 것 같았다.

희뿌연 담배연기와 독한 술 칼바도스에 의지해서 하루하루 연명할 뿐이었다.

매일 개선문 앞을 지나가지만 매일 패배한 사람처럼 살아가고 있던 것이었다.

행복을 얻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왔지만 그는 조앙도, 조앙과 함께 누릴 수 있는 행복도 거부하고 말았다.

소설의 결말은 조앙의 비참한 죽음과 2차 세계대전의 발발 그리고 라비크가 체포당하는 것으로 끝을 맺는다.

두 사람이 서로 맺어져서 행복하게 살았으면 좋겠다고 했던 나의 바람은 여지없이 꺾이고 말았다.

독일의 시인 칼 부세의 <산 너머 행복>이란 시가 생각난다.


“산 너머 언덕 너머 먼 하늘 밑에

행복이 있다고 사람들이 말하네.

아! 나도 친구 따라 찾아갔다가

눈물만 머금고 돌아왔다네”


라비크 안에 행복이 있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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