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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은석 Sep 20. 2022

한 작가의 책 여러 권을 읽는 기쁨


책 읽기 운동을 하면서 나에게 나타난 재미있는 현상 중의 한 가지는 한 작가의 책들을 여러 권 섭렵한다는 것이다.

어떤 의도를 가진 것은 아니다.

전에 그 작가가 쓴 책을 읽으면서 너무 좋은 감동을 받았는데 그 감동의 여운이 가시기 전에 그 작가가 쓴 다른 책들을 읽어보고 싶은 마음이 들기 때문이다.

이건 나만의 경험이 아니라 책을 읽는 거의 모든 사람들의 경험일 것이다.

김승욱, 김형석, 김훈, 류시화, 박경리, 박완서, 신경숙, 안병욱, 유시민, 이덕일, 이외수, 정민, 정채봉, 정호승, 이어령, 이해인, 조정래, 최만석, 최명희, 최재천, 황석영 선생의 책들은 나에게 문화와 문학과 역사와 전통을 폭넓게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세계문학전집에 이름을 올린 작가들의 책들은 인류의 보편적인 마음을 이해할 수 있게 해 준다.

세계문학전집에 실린 작가의 또 다른 책들을 찾아보는 것도 책 읽는 즐거움 중의 하나이다.




이런 분위기로 인해서 최근에는 독일 작가 에리히 마리아 레마르크의 소설들을 탐독할 수 있었다.

그 시작은 <서부전선 이상 없다>였다.

오래전 흑백영화로도 나왔는데 언젠가는 읽어야겠다고 마음만 먹다가 드디어 책장을 펼쳤다.

그 후로 <개선문>과 <사랑할 때와 죽을 때>를 이어서 읽게 되었다.

<서부전선 이상 없다>가 1차세계대전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면 <개선문>은 2차 세계대전 직전의 상황이고 <사랑할 때와 죽을 때>는 2차 세계대전 막바지를 시간적 배경으로 하고 있다.

근 30년 동안의 시간 차이가 있는데 작가의 관점은 한결같았다.

전쟁의 포화 속에서 영문도 모른 채 희생되는 군인들과 시민들이 주인공이다.

그들의 소원은 전쟁에 승리해서 나라의 힘을 더 키우는 게 아니다.

그들의 소원은 하루빨리 고향으로 돌아가서 아버지 어머니와 함께 사는 것이고 사랑하는 사람과 단란한 가정을 일궈가는 것이다.




실제로 레마르크는 열여덟 살의 나이에 군인으로 징집되어 1차 세계대전의 전장에 투입된 경험이 있다.

여러 번 사선을 넘으면서 그가 생각한 것이 그의 작품 속에 나타난 것이다.

아마 전쟁에 대한 그의 생각은 ‘이게 뭐냐?’였을 것이다.

과연 누구를 위해서 전쟁을 하는 것이냐는 질문이다.

전쟁이란 명분으로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의 생명을 앗아가는 게 옳으냐고 묻고 있다.

전쟁 때문에 빼앗긴 인생과 사랑과 가족들은 어떻게 보상을 받을 수 있느냐고 묻고 있다.

전쟁은 헐리우드 영화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영웅이 출현해서 아름답게 마무리되는 것이 아니다.

수많은 트라우마를 남기고 모든 것을 파괴한다.

레마르크는 자신의 소설에서 그런 불편한 사실들을 낱낱이 밝혔으니 당연히 히틀러에게 눈엣가시가 되었다.

그래서 그의 책은 금지도서가 되었고 그는 고향 땅에 살 수가 없어서 멀고 먼 미국으로 망명갈 수밖에 없었다.




왜 히틀러가 레마르크에게 신경을 곤두세웠을까?

고작 하나의 글쟁이일 뿐인데 무슨 영향이 있을라고! 책 한 권 나왔을 때는 ‘그런 생각을 가질 수도 있지 뭐.’하면서 무시할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두 권, 세 권의 책이 나오니까 마음이 복잡해졌을 것이다.

거기다가 책 속에 담긴 작가의 생각이 점점 더 발전하고 있었으니까 말이다.

아무리 대다수의 독일 국민이 “하일 히틀러!”를 외치는 상황이었다 하더라도 “그게 아니지 않을까요?”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을 쉽게 무시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계란으로 바위 치기 하는 것 같지만 꾸준히 문제를 제기하고 인류 보편의 정신에 호소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 주변으로 사람들이 모여들게 된다.

더군다나 시간이 지나도 자신의 신념이나 사상에 변함이 없는 사람에게는 존경심을 표하기까지 한다.

나는 그런 경험을 레마르크의 소설 3권을 읽으면서 느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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