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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은석 Sep 18. 2020

상처 속에 깃든 축복

‘축복’이라는 영어 단어 ‘Blessing’은 ‘상처’라는 뜻을 지닌 프랑스어 ‘Blessure’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그러니까 “당신을 축복합니다”라는 말 안에는 “당신에게 상처를 줍니다”라는 뜻이 내포되어 있는 것이다.

유럽의 역사를 조금만이라도 들여다보면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잠시라도 쉴 틈 없는 계속 되는 전쟁 속에서 그들은 살아남아야 했다. 때로는 이민족의 침입을 막아내야 했고, 서로 다른 부족끼리의 싸움에서 이겨야 했고, 오랜 기간 종교전쟁을 치러야 했다.

전쟁에서 승리하고 돌아오는 군인들을 위해서 모든 사람들이 길거리로 쏟아져 나와 개선식을 치러주었다.

기쁨의 함성과 환희의 승전가를 부르며 늠름하게 행진하는 군대이지만 군인들의 모습은 온통 상처투성이였을 것이다.     


전쟁의 현장은 처참했다. 화살을 맞고 칼을 맞으며 군인들의 몸은 만신창이가 되어갔다.

상처 없는 승리는 없었다.

누구나 다 상처 입기를 원치 않았지만 가족의 안녕을 위해서, 나라의 평화를 위해서 상처를 입어야만 했다.

상처가 없다는 것은 전쟁터에서 최선을 다하지 않았다는 반증이 되기도 했다.

그랬기에 사람들은 군인들의 몸에 난 상처를 바라보면서 그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하였다. 그리고 그 상처에 얽힌 전쟁 이야기를 들으려고 군인들 주위로 몰려들기도 하였다.

상처 때문에 군인들은 사람들로부터 존경을 받았고, 가족을 지켜내고 생계를 이어갈 수 있었다.

상처가 그들에게 복이 되었던 것이다.

그들이 입은 상처는 그야말로 ‘영광의 상처’였다.     


이런 시간들이 이어지면서 어느 때부터인가 ‘상처를 입었다’는 말은 ‘복을 받게 되었다’는 뜻을 함축하게 된 것 같다.

그리고 그 말은 인생의 진리처럼 받아들여지게 되었다.

실제로 상처가 없이는 얻을 수 있는 일이 없다.

우리의 인생은 온통 상처를 입고 그 상처를 극복하는 나날들의 연속이다.

상처 없는 인생이 없고 상처 받지 않는 일은 없다.

두발자전거를 처음 타는 아이들의 무릎은 깨지고 긁힌 상처로 가득하다. 그런 아이들에게 적어도 세 번은 넘어져야 자전거를 탈 수 있다는 말을 해 준다. 상처 입는 것을 무서워하지 말라는 것이다. 그렇게 상처를 입다 보면 나중에는 온 세상을 자전거로 누빌 수 있는 값진 보상을 받기 때문이다.

상처 입는 것을 두려워한다면 자전거 타는 일조차 어려울 것이다.     


공자는 55세가 넘은 나이에 제자들을 이끌고 자신을 받아줄 제후를 찾아 나섰다. 하지만 그 누구도 공자를 환영하지 않아 무려 14년 동안 마음의 상처를 입으며 정처 없는 방랑세월을 보낼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그 상처의 시간을 지나 공자는 수 천 년을 이어오는 사상가가 된 것이다.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는 매와 채찍의 상처, 가시관의 상처, 못자국과 창자국, 그리고 사람들의 야유로 온몸과 마음에 상처를 받았다. 하지만 그 상처로 기독교인들은 구원을 받고 천국의 백성이 된다. 예수의 상처가 축복이 된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가 받는 상처 속에 우리가 받을 축복도 숨겨놓으셨다.

상처 받아 피해 받았다고 원망하지 마시라. ‘피해’를 뒤집으면 ‘해피(Happy)’가 된다.

상처가 축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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