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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은석 Sep 23. 2022

따뜻하고 부드러운 사람이 그립다

 

미국의 심리학자 해리 할로우(Harry Harlow) 박사는 젖먹이 아기 원숭이들을 대상으로 독특한 실험을 하였다.

아기 원숭이를 우리 안에 들여보내고 그 앞에 원숭이 인형 두 개를 설치해 두었다.

원숭이 인형은 아기 원숭이에게는 마치 엄마 원숭이처럼 보였을 것이다.

그런데 두 인형 중의 하나는 철사로 만든 인형이었고 다른 하나는 부드러운 수건으로 만든 인형이었다.

철사로 만든 인형에게는 우유병이 있었고 천으로 만든 인형에게는 우유병이 없었다.

당연히 원숭이들이 우유병이 있는 철사엄마와 많은 시간을 보낼 줄 알았다.

결과는 그 반대였다.

아기 원숭이들은 우유를 먹을 때는 어쩔 수 없이 철사엄마에게 갔지만 그 외의 시간에는 줄곧 수건엄마와 함께 있었다.

수건엄마에게서 잠시 떨어져 있다가도 시끄러운 소리가 나거나 무서운 상황이 펼쳐지면 여지없이 수건엄마에게 달려가 안겼다.

철사엄마에게는 가지 않았다.




할로우 박사는 또 다른 실험도 해 보았다.

이번에는 철사엄마와 수건엄마, 두 개의 인형 모두에게 우유병을 넣어두고 아기 원숭이들의 상태를 살펴보았다.

배고픈 아기 원숭이들은 일단 가까운 곳에 있는 엄마 인형에게 가서 우유를 먹었다.

그런데 수건엄마에게서 우유를 먹은 원숭이들은 소화를 잘 시키는 반면에 이상하게도 철사엄마에게서 우유를 먹은 원숭이들은 소화를 잘 시키지 못하고 자주 설사를 하였다.

좀 더 오랜 시간 동안 관찰했더니 아기 원숭이들이 점점 배가 고파도 철사엄마에게는 가지 않고 수건엄마에게만 몰려갔다.

이 실험을 통하여 할로우 교수는 아기 원숭이가 배고픈 문제를 해결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에 못지않게 부드럽고 따뜻한 환경을 찾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동물들도 따뜻하고 부드러운 것을 좋아한다는 이 주장은 이후에 그 유명한 ‘해리 할로우의 법칙’으로 자리매김하게 되었다.




사람들도 부드러운 사람을 찾는다.

날카롭고 차가운 사람보다는 부드럽고 따뜻한 사람을 좋아한다.

매사에 똑 부러지고 정확한 사람보다 조금 틈이 보이더라도 너그러운 사람이 인기가 있다.

FM대로 완벽을 추구하며 살아가는 사람보다 허점이 있는 사람에게 더 많은 사람이 모여든다.

자기가 일을 잘했다고 하는 사람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그래 너 잘 났어!’라고 얘기하고 싶어진다.

자기 자랑만 늘어놓는 것 같아서 더 이상 이야기하기가 싫어진다.

그런데 자신의 실수를 이야기하고 부족한 점을 이야기하는 사람의 말은 귀 기울여 들으려고 한다.

그가 실수한 것도 재미있고 그가 힘들어하는 것을 보면 안쓰럽기도 해서 작은 보탬이나마 내가 나서서 도와주고 싶은 마음이 든다.

물론 강인하고 냉철한 사람들이 있어서 일이 척척 진행되는 면이 있다.

그러나 일은 일이고 사람 대 사람으로 만날 때는 부드러운 사람이 좋다.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시대는 이전 시대의 사람들보다 훨씬 많이 배웠고 훨씬 많이 가졌고 훨씬 많은 것을 누리고 있다.

세계적으로나 인류사적으로나 지난 100년 동안 인류는 괄목할만한 발전을 이룩했다.

가히 만물의 영장이라는 칭호에 어울리도록 미지의 영역이었던 곳을 탐사하고 새로운 문명을 탄생시켰으며 지식과 정보의 홍수를 이루었다.

그런데 너그러운 마음, 배려하는 마음, 양보하고 용서하고 품어주는 마음은 급격하게 줄어든 것 같다.

내 것을 챙기려는 사람은 많은데 다른 사람을 챙겨주려는 사람은 찾아보기 힘들다.

내 돈 내고 내 권리를 행사하는 게 당연한데 굳이 내가 손해 보면서까지 남에게 잘 대해주며 살아야 하느냐고 한다.

그 말도 맞지만 그래도 어머니의 품처럼 두 팔 벌려 반겨주는 사람, 지친 일상에 편안한 휴식을 주는 사람, 오랜 친구와 같은 다정한 사람, 그런 따뜻하고 부드러운 사람이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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