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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은석 Oct 14. 2022

세계문학전집은 나를 배신하지 않는다


무슨 책을 읽을까 고민이 될 때가 있다.

[밀리의 서재]를 들춰봐도, 전자책 도서관을 살펴도, 교보문고와 예스24를 뒤져도 책을 고르지 못할 때가 있다.

눈에 보이는 책들은 모두 시시해 보인다.

관심이 가지 않는다.

마음에 딱 꽂히는 책이 있으면 좋겠는데 그런 책이 보이지 않는다.

부류별로 살펴보기도 한다.

인문, 문학, 예술, 과학, 철학, 에세이....

그 어느 부류를 보더라도 책을 고르지 못하겠다.

책 읽기가 귀찮아진 것인지, 아니면 책 좀 읽었다고 마음이 교만해진 것인지 내 눈앞에 보이는 책들이 시시해 보인다.

이럴 때면 어김없이 세계문학전집으로 눈을 돌린다.

친절하게도 세계문학전집에는 번호가 있다.

전집이니까 그렇다.

1번부터 100번을 넘고 200번을 넘는다.

내가 읽은 책보다 안 읽은 책이 훨씬 많다.

그중에서 아무 책이나 한 권 고른다.

무슨 책을 읽을지 감이 잡히지 않을 때, 답은 세계문학전집에 있다.




세계문학전집의 장점은 너무나 많다.

무엇보다도 출판사에서 고심을 하며 선별한 끝에 100권, 200권 택한 책들이기 때문에 작품의 수준이 굉장히 높다.

나에게 생소한 작품이라고 하더라도 이미 세계적으로 유명세를 탔던 작품들이다.

수많은 독자들에게 사랑을 받았고 영감을 준 책들이다.

그러니 몇 번 책의 작가가 누구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아무 책이나 골라도 충분히 즐거운 독서가 된다.

고맙게도 출판사에서 일일이 번호를 붙여놨다.

그래서 전에 무슨 책을 읽었는지 어떤 책은 아직 안 읽은 책인지 구별하기가 쉽다.

같은 작가의 작품들이 두 권 이상 있다면 그 작가의 책들은 꼭 읽어보라는 출판사의 권고라고 받아들이면 좋다.

출판사가 어떤 곳인가? 기업이다.

기업의 목적은 이윤을 추구하는 것이다.

이 책을 출판하면 얼마만큼의 수입이 들어올 것이라는 계산을 다했다.

그만큼 충분한 값어치를 하는 좋은 책들이다.




세계문학전집이라면 인류의 고전들을 주로 다룬다.

아무리 베스트셀러라고 하더라도 최근에 출판된 책을 포함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적어도 한 세대를 지나면서 끊임없이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는 책들이다.

유행을 타지 않는다.

아니 유행을 타지 않는 게 아니라 언제나 유행이 되는 것이다.

그런 책들을 만나기란 쉽지 않다.

이번 달 베스트셀러가 되었다고 해서 다음달에도 베스트셀러가 된다는 보장은 없다.

지금 시대에는 딱 들어맞는 책이지만 한 세대 후에는 폐지 처리되는 책들도 있다.

과거에는 인기가 많았던 책인데 지금은 들어본 적도 없는 책들도 있다.

그런 책들을 고전이라고 하지 않는다.

그냥 옛날 책이라고 한다.

고전이라고 해서 어느 종교의 경전이나 신화, 철학, 소설만 해당되는 것은 아니다.

가볍게 읽는다고 하는 자기계발서 중에서도 데일 카네기의 <인간관계론> 같은 책들은 충분히 고전이라고 할 수 있다.




책은 그 시대를 보여주기 때문에 고전을 읽으면 옛 어른들이 살았던 세상을 엿볼 수 있다.

고리타분한 시간이 아니다.

오늘날의 세상을 이해하려면 반드시 예전의 세상을 살펴보아야 한다.

나를 소개할 때 내 아버지와 할아버지를 소개하는 것과 같다.

뿌리가 없는 나무가 없듯이 고전이 없는 현대는 없다.

고전은 따분한 옛날이야기가 아니다.

비록 작품 속 배경은 옛날이 분명하지만 주인공의 마음은 꼭 내 마음을 닮아 있다.

꼭꼭 숨겨 놓은 내 마음이 들킨 것 같다.

내가 고민하는 문제들을 그도 고민하고 있었다.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몰라 헤매고 있는데 주인공이 한 가지 방향을 알려준다.

그 길의 끝이 좋을 수도 있고 안 좋을 수도 있는데 일단은 주인공이 하나의 길을 나에게 보여준다.

굉장한 소득이다.

이런 게 고전을 읽는 유익이고 즐거움이다.

무슨 책을 읽을지 모를 때, 세계문학전집은 나를 배신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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