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내 부모님 뻘, 이모님 뻘 되는 어르신들을 많이 만난다.
내가 웃어른 모시는 것을 잘하는 성격이어서 그런 게 아니다.
내가 하는 일 때문에 그렇게 만난다.
60대 중후반만 되더라도 건강이 약해지는데 70대가 넘고 80대가 넘는 분들은 오죽할까?
안 아픈 데가 없다고 하신다.
발걸음도 조심스럽고 무릎과 허리 관절도 약해지셨다.
예전에는 찬란한 삶을 사셨던 분들이시다.
공부도 많이 하셨고 좋은 직장에 다녔으며 사업도 잘 일구셨던 분들이시다.
모든 일에 똑 부러지는 똑똑이었는데 최근에는 기억력이 약해져서 헛똑똑이가 되었다고 하신다.
듣고 돌아서면 잊어버리니까 혹시 치매가 아닐까도 하신다.
노화의 증세가 몸 곳곳에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사람이 한평생 건강하게 살 수는 없다.
아무리 최첨단 기계라 하더라도 권장하는 사용시간이 있다.
그 시간을 넘어가면 잔고장이 발생한다.
우리의 몸도 권장 사용시간이 있다.
질주하듯이 달려왔는데 어느덧 걸음이 느려진 것 같을 때 ‘내 몸의 권장 사용시간이 다 되어가고 있구나!’하는 생각이 든다.
병원에서 이제는 건강을 위해서 약을 복용해야 한다는 말을 들을 때, 갑자기 눈이 침침해지고 눈가에 눈물이 맺힐 때, 옆에서 뭐라고 한 것 같은데 잘 안 들릴 때, 이빨이 툭하고 하나 빠질 때 그런 마음이 든다.
순간 가슴이 덜컥한다.
더 나이가 들면 내가 업고 안고 키워주었던 자식들이 나를 데리고 병원 나들이를 할 것이다.
그때가 되면 나도 내 몸의 사용기간이 거의 다해가고 있다고 생각이 들 것이다.
씁쓸한 생각이지만 받아들여야 할 사실이다.
그때가 되면 나도 내가 만나는 어르신들처럼 젊은 사람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겠지?
내 어렸을 적에 할머니께서 입버릇처럼 하신 말씀처럼, 내 어머니가 지금 입버릇처럼 하시는 말씀처럼 “빨리 가야 할 텐데...”라는 말을 나도 입버릇처럼 되뇌겠지?
나이가 많으면 빨리 가는 게 나은가?
그렇지만은 않다.
살아 있는 모든 존재는 다 살아갈 이유가 있다.
그 존재 이유를 평생 동안 찾고 찾다가 가는 게 인생이라고 나는 믿는다.
내가 살아갈 존재의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딱 한 가지만은 아니다.
상황에 따라, 나이에 따라 존재의 이유도 달라진다.
대체적으로 그 이유는 더 많이 늘어난다.
갓난아기였을 때는 그 자리에 누워있기만 해도 존재 이유로 충분했다.
십 대의 나이 때는 부모님과의 관계, 선생님과의 관계, 친구들과의 관계 속에서 존재의 이유를 찾았다.
내가 성인이 되고 부모가 되자 나의 존재의 의미를 나 혼자만의 문제로만 볼 수 없었다.
나와 내 아내와 내 자녀와 그들을 둘러싼 또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찾아야 했다.
나 혼자만 해결하면 되는 문제도 아니고 내가 없어졌다고 해서 해결되는 문제도 아니다.
내 존재 의미를 찾는 것은 일평생 계속될 것이다.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으니 어르신들을 대할 때도 가능하면 그분들에게 긍정적인 말씀을 드리려고 한다.
우리 어머니처럼 하나님께 빨리 데려가 달라고 기도하지 마시라고 한다.
하나님이 다른 기도는 들어주셔도 절대 안 들어주시는 기도가 있는데 그것은 ‘빨리 데려가 달라’는 기도라고 말이다.
살아서 해야 할 일이 산더미처럼 쌓여있는데 데려가면 안 된다.
내 아버지는 쉰셋이라는 이른 나이에 가셨다.
이제 조금 있으면 내가 아버지 나이만큼 된다.
솔직히 두렵다.
아버지가 살아계셨다면 오십 대의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할지 조언을 들을 수 있었을 텐데 나는 그런 조언을 들을 수 없다.
내가 육십 대, 칠십 대가 되어도 마찬가지다.
나 스스로 내 삶을 개척하듯이 살아야 한다.
집안에 어르신이 계시다는 것은 그런 의미를 보더라도 큰 축복이다.
언제든지 찾아뵙고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물어볼 수 있다는 것은 굉장한 축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