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처럼 맞이하는 공휴일인데 전날 밤부터 계속 비가 내린다.
어디 바람이라도 좀 쐬고 오려고 했는데 아이들과 시간 맞추기도 여의치 않다.
뭐 좀 하려고 하면 무엇인가 다른 일이 꼬인다.
모든 일들이 완벽하게 들어맞았던 적이 도대체 언제 있었는지나 모르겠다.
그럴 수 있을 것 같은데 그러지 못했다.
하루의 계획뿐만 아니라 내 삶 자체가 완벽과는 거리가 멀었다.
나름대로 완벽주의 기질을 발휘하기도 했지만 어느 구석에선가 흐믈흐믈거리는 게 있었다.
눈을 돌려 다른 사람을 보면 또 신기하다.
내가 보기에 분명히 구멍이 많은 사람인데 이상하게도 일이 잘 풀리는 것 같다.
‘어떻게 저런 사람이 사업을 하지?’ 생각을 하는데 그 사업이 잘된다.
가방끈이 짧아서 일을 잘할 수 있을까 생각했는데 대학 나오고 대학원 나온 사람보다도 훨씬 일을 잘한다.
정말로 사람들에게는 공부머리가 따로 있고 일머리가 따로 있는가 보다.
위인들의 삶을 들여다보면 그들이 이룬 위대한 업적에 감탄을 하게 된다.
그런데 그들의 삶에 드리워졌던 암담한 환경에 안타까운 마음도 든다.
위대한 업적을 이룬 다음에 승승장구하여 숨이 다하는 날까지 그 업적을 이어갔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러나 역사는 그렇게 호락호락한 삶은 없었다고 가르쳐준다.
고구려의 장군 을지문덕은 살수대첩의 엄청난 전과를 올렸지만 그 이후의 삶에 대해서는 알려지지 않았다.
단재 신채호는 <을지문덕>이란 책에서 이 부분을 굉장히 안타까워했다.
혹시 너무나 위대한 공적을 올렸기 때문에 다른 이들로부터 시기를 받아 사라진 것은 아닐까 하는 의문이 들기 때문이다.
충무공 이순신 장군은 임진왜란에서 혁혁한 전공을 세웠지만 백의종군하라는 이상한 명령을 따를 수밖에 없었다.
만약 을지문덕이나 이순신 장군이 계속 싸울 수 있었다면 우리 역사는 지금과는 엄청나게 달라졌을 것이다.
위인들은 그들의 시대보다 적어도 한두 세대 앞선 미래를 보았던 것 같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들을 천재라고 불렀다.
하지만 위인들과 동시대에 살았던 사람들은 그들의 천재성을 이해하지 못했다.
오히려 이상한 사람으로 취급하기도 했다.
빈센트 반 고흐는 미술사에 획을 그은 위대한 화가이지만 살아생전에 그가 그린 그림은 제값을 받지 못했다.
당연히 그의 그림을 구입하는 사람도 없었다.
오직 그의 동생 테오만이 형님을 불쌍히 여겨서 그림 한 점 사주었을 뿐이다.
정확히 고흐가 죽은 지 한 세대가 지나자 고흐의 그림들은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작품들이 되었다.
고흐는 정말 한 세대 앞을 내다보고 그림을 그린 천재였던 것 같다.
음악의 아버지라 불리는 바흐는 평생 가난한 음악가로 살았다.
하지만 100년 후에 멘델스존이 그의 음악을 재발견하자 바흐는 서양음악의 대표자가 되었다.
그도 시대를 한참 앞섰던 천재였다.
위인들의 삶은 눈물로 얼룩져 있다.
체코인들에게 애국가와 같은 <나의 조국>을 작곡한 스메타나는 베토벤처럼 청력을 상실했다고 한다.
음악가가 자신이 작곡한 음악을 듣지 못한다는 게 얼마나 큰 고통이었을까?
내일 지구의 종말이 온다고 해도 나는 오늘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겠다고 했던 스피노자는 유대인 공동체로부터 추방당했다.
먹고 살아가기 위해서 안경 수리하는 일을 했는데 그때 너무나 많은 유리가루를 마셔서 일찍 죽게 되었다고 한다.
그에게 편안히 공부할 수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조선 500년의 역사 속에 별과 같이 빛났던 다산 정약용은 백성들을 돌보기 위한 실력과 인품을 두루 갖춘 인물이었다.
하지만 그가 받아들여야 했던 운명은 18년 동안의 귀양살이였다.
위인들에게도 완벽한 삶은 없었다.
완벽한 울음만 있었을 뿐이다.
하지만 그들이 흘린 눈물 때문에 우리가 더 나은 삶을 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