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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은석 Oct 04. 2022

누구에게나 천일의 시간은 있다

영국 역사에서 가장 드라마틱했던 시절을 꼽으라면 수장령을 반포하고 가톨릭과 결별을 선언했던 헨리 8세 시기라고 할 것이다.

18살에 왕위에 올라 56년 인생을 사는 동안 38년 동안 왕 통치를 하였다.

짧지 않은 통치였다.

단명하는 왕들도 많고 반역자들의 손에 최후를 맞이하는 왕들도 많은데 헨리 8세는 숱한 염문을 뿌리면서도 장수하였다.

마치 조선의 숙종 임금처럼 어떤 때는 이 사람을 세웠다가 금방 쫓아버리고 그 자리에 다른 사람을 세웠다.

자신을 가르쳐줬던 토마스 모어를 대법관에 앉히더니만 그에게 반역의 죄를 씌워 처형시키고 그 자리에 크롬웰을 세웠다.

크롬웰이 일 좀 하니까 다시 그를 제거해버렸다.

그런 식이었으니까 로마 가톨릭과 대립각을 세웠던 것이고 영국의 왕이 교회의 왕이 된다는 수장령을 공포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면서 기존의 질서들을 파괴하고 새로운 질서를 만들어내었다. 



열여덟 살이 될 때까지 헨리 8세는 자신이 왕이 되리라는 생각을 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에게는 제왕학을 열심히 공부하고 있던 형님이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갑작스럽게 형님이 죽고 얼떨결에 그가 왕위를 이어받게 되었다.

유럽의 정치지도상 왕비를 택하는 것은 도통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이미 영국 왕실과 혼인 약속을 한 스페인의 아라곤은 교황청과 강력한 연줄이 있는 가문이었다.

그래서 헨리 8세는 어쩔 수 없이 형님과 약혼을 했던 스페인의 공주 캐서린을 왕비로 맞이했다.

여기까지가 헨리 8세가 어쩔 수 없이 받아들여야 했던 운명의 시간들이었다.

그 후로 그가 변했다.

아들을 낳지 못하자 캐서린에 대한 미움이 싹텄고 자신과 캐서린은 억지로 결혼한 것이며 한 번도 잠자리를 같이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교황청에 이혼을 허락해달라고 했다.

당연히 교황청에서 들어줄 리가 없었다.




교황청에서는 이 놈을 혼내주려고 했을 것이다.

하지만 오히려 혼을 낸 쪽은 헨리 8세였다.

교황청에 보내주던 세금을 안 보내고 가톨릭의 모든 재산을 자신에게 귀속시켜버렸다.

사제들을 힘으로 눌러서 자신에게 충성서약을 하게 했고 교황청과 결별하였다.

영국 성공회가 탄생하게 된 배경이다.

이때 헨리 8세의 눈에 들어온 여인이 있었는데 그녀가 앤 불린이다.

캐서린 왕비의 시녀였던 지위 낮은 가문 출신인데 일약 스타가 되었다.

헨리 8세의 거침없는 행동으로 둘은 결혼식을 올렸고 그녀는 왕비가 되었다.

딸 엘리자베스를 낳았고 아들도 하나 낳는가 싶었는데 그만 죽고 말았다.

그 후로 왕의 태도가 돌변했다.

왕이 다른 여인에게 눈길을 돌리는 것을 알아챘지만 앤 불린이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오래지 않아 그녀는 이혼당하고 간통죄라는 명목으로 처형되었다.

그녀가 왕비의 자리를 유지한 기간은 천일 남짓이었다.




천일이라는 시간은 아라비안나이트가 탄생하게 된 시간이기도 하다.

페르시아의 샤리아르 왕은 왕비의 간통을 목격한 후 여성에 대한 극한 혐오감을 갖게 되었다.

그래서 매일 새로운 처녀와 잠자리를 같이 한 후 그 처녀를 처형하였다.

온 나라에 여성들이 사라질 판이었다.

그때 지혜로운 처녀 셰헤라자드가 일부러 왕과 결혼했다.

그리고 잠자리를 같이 하기 전에 왕에게 이야기를 들려주겠다며 기나긴 이야기보따리를 풀어놓기 시작했다.

무려 천일 동안 다양한 이야기가 이어졌다.

그러는 동안에 왕 여성 혐오증사라졌고 세상은 <천일야화>를 얻게 되었다.


앤 불린의 천일은 높은 산올라갔다가 정상을 찍고 내려온 시간이었다.

그러나 셰헤라자드의 천일은 깊은 골짜기로 내려갔다가 바닥을 찍고 올라온 시간이었다.

누구에게나 천일의 시간은 있다. 그 시간을 어떻게 사용하고 어떻게 받아들일지는 각자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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