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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은석 Oct 21. 2022

‘우물쭈물하다가 내 이럴 줄 알았다’ 다시 보기


영국의 극작가 조지 버나드 쇼가 자신의 임종을 앞두고 주변 사람들에게 자기 묘비에는 이런 말을 적어 달라고 부탁했다고 한다.

‘우물쭈물하다가 내 이럴 줄 알았다.’ 생전에도 <피그말리온> 같은 희곡을 써서 사람들에게 감동과 즐거움을 주었던 사람이었는데 비문으로도 사람들을 웃겼다.

하지만 단순히 웃기기만 한 게 아니라 웃으면서도 진지하게 생각하게 만들었다.

그 비문을 읽는 사람마다 더 이상 우물쭈물하면서 살면 안 되겠다는 결심을 하게 된다.

아직 결정을 내리지 못한 일들에 대해서는 빨리 결정을 내리고, 아직 행동하지 못한 일들에 대해서는 빨리 행동해야겠다는 마음을 불러일으킨다.

현대그룹의 창시자인 故 정주영 회장의 말처럼 “해보기나 했어?”라는 음성이 마음 깊숙한 곳에서 울리는 것을 느낀다.

심사숙고한다고 하면서 기회를 다 놓쳐버리느니 좌충우돌하더라도 일단 일을 저질러보자는 마음이 든다.




그런데 우물쭈물하는 것을 안 좋게만 평가할 수는 없다.

긍정적으로 보면 우물쭈물하는 것은 생각을 깊게 하면서 신중하게 처신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러다가 내린 결정이 좋은 결과를 얻게 되면 통찰력이 뛰어난 사람이라는 평을 받기도 한다.

때로는 너무 많은 생각을 하느라 결정을 내리지 못한 채 시간이 흘러버리기도 한다.

그런데 그게 또 이득이 될 때도 있다.

괜히 이쪽이든 저쪽이든 몸을 움직였다가 손해를 입는 경우도 많기 때문이다.

어떤 이들은 우물쭈물하는 사람을 보면 답답해하면서 모험이라도 한번 걸어보라고 한다.

인생은 이러나저러나 모험이라고 하면서 부추긴다.

한 번 쓰러지면 다시 일어서면 된다고 말한다.

하지만 모험이 다 성공하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어떤 인생은 한 번 쓰러지는 것으로 영영 끝나버리는 인생도 있다.

한 번밖에 없는 인생인데 신중하게 잘 살피는 것도 필요하다.




버나드 쇼가 우물쭈물했다고 했는데 그렇게 우물쭈물했기 때문에 그가 위대한 극작가가 되고 노벨문학상 수상자가 되었는지도 모른다.

버나드 쇼처럼 글을 쓰는 작가에게는 우물쭈물하는 게 습관이고 일상일 수도 있다.

이런 표현을 쓰는 게 나은지 저런 표현을 쓰는 게 나은지 이 단어가 적절한지 저 단어가 적절한지 끊임없이 고민해야 한다.

하나를 택하면 그 외의 여러 개는 내려놓아야 한다.

그런데 내려놓는 것들도 모두 아깝고 아쉬운 것들이다.

당연히 우물쭈물할 수밖에 없다.

오늘날처럼 컴퓨터를 이용해서 타자를 치는 사람들이야 지우고 다시 쓰는 게 별 문제가 되지 않는다.

하지만 과거에 종이도 귀하고 잉크나 펜도 귀하던 시절에는 이미 쓴 글을 지우는 게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한 번 사용한 종이는 재사용하기도 어려웠다.

그런 시절이었으니 글 한번 쓰는 데도 엄청나게 우물쭈물해야 했을 것이다.




이런 사정을 다 알고 있었을 위대한 문장가였으니까 그의 문장 한 줄도 쉽게 읽고 넘길 수 없다.

버나드 쇼는 분명히 내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다양한 말을 하고 싶었을 것이다.

시간도 없고 기록할 지면도 없었기 때문에 자기 비문에 암호처럼 글을 새겨달라고 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우물쭈물하다가 내 이럴 줄 알았다’는 말을 다시 한번 유심히 살펴볼 필요가 있겠다.

암호를 해독하는 것처럼 앞으로도 읽고, 거꾸로도 읽고, 천천히 소리 내서 읽기 하면 좋을 것 같다.

지금까지 내가 알고 있었던 지식을 내려놓고 마치 처음 보는 문장인 것처럼 신기한 마음을 가지고 읽어보아야겠다.

어쩌면 버나드 쇼가 이 문장 안에 엄청난 비밀을 숨겨놓았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이 짧은 문장이 보물창고에 들어가는 암호문일지도 모른다.

‘열려라 참깨!’도 단순한 말인 것 같지만 보물을 숨겨둔 동굴의 문을 여는 열쇠였듯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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