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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은석 Oct 29. 2022

가을이면 생각나는 것, 시 그리고 기도


집 앞에 있는 공원을 지나가는데 바람이 불었다.

하늘에서 후드득 낙엽들이 떨어졌다.

땅바닥에는 벌써 떨어진 낙엽들이 수북이 쌓여 있다.

괜히 분위기 좀 잡아보고 싶은 마음이 인다.

임자 없는 벤치에 앉아 떨어지는 낙엽을 온몸으로 맞아보고 싶다.

손에 커피 한 잔 들고 홀짝거리면 커피 향과 함께 깊은 가을의 분위기로 빠져들 것 같다.

옆에 책 한 권 있으면 더없이 완벽한 그림이 될 것 같다.

기왕이면 그 책이 시집이면 좋겠다.

가을은 시를 읽기에 딱 좋은 계절이다.

시집 한 권쯤은 가까이해야 할 것 같은 마음이 드는 때가 가을이다.

그래서인지 많은 시인들이 가을을 배경으로 노래했다.

“가을에는”이라고 운을 떼 보면 자연스럽게 그다음에 멋들어진 시구가 이어진다.

“가을에는 기도하게 하소서, 사랑하게 하소서, 호올로 있게 하소서.” 

고등학생 때 접한 김현승 시인의 <가을의 기도>가 자동반사적으로 튀어나온다.




내가 시인은 아니지만, 시를 아주 좋아하는 사람도 아니지만, 이렇게 시 한 편 정도 읊조릴 수 있다는 것이 참 좋다.

시를 읊다 보면 뭐라고 설명할 수 없는 그 무엇이 내 마음에 들어온다.

그것이 쿵쾅거리는 심장박동을 조금 잦아들게 하는 것 같기도 하고 복잡한 마음을 조금은 여유롭게 해 주는 것 같기도 하다.

가만히 앉아 있으면 고민거리가 한두 가지가 아니다.

연로하신 부모님, 아이들, 노후, 경제력, 건강.

이것들만 해결하려고 해도 편두통이 도질 것 같다.

나라를 살리려고 광화문이나 시청 앞에 나가서 고함을 치는 사람들이 대단하게 여겨진다.

끝없는 바닥으로 마음이 내려가는 것을 느낀다.

그럴 때 좋은 시 한 편을 대하면 시금치를 먹은 뽀빠이처럼 불끈 힘이 솟는다.

분명히 조금 전까지는 아팠는데 지금은 아픈 것을 못 느낀다.

마치 마약 성분이 있는 진통제를 맞은 것처럼 시를 읽으면 삶의 고통들을 잠시 잊게 된다.




그래서 오늘은 이문재 시인의 <오래된 기도>를 읊고 있다.

왜 이 시를 택했는지는 이유가 없다.

그냥 ‘가을에는’이라는 말을 떠올렸더니 김현승 시인의 “기도하게 하소서”라는 시구가 생각났다.

거기서 ‘기도’라는 단어를 생각하니까 이문재 시인의 <오래된 기도>가 떠오른 것이다.

마치 사슬처럼 꼬리에 꼬리를 이어서 툭 떠오른 것이다.

아마 이문재 시인의 <오래된 기도>가 내 마음에 깊이 새겨졌기 때문에 떠올랐을 것이다.

오늘 같은 가을날에 꼭 한번 읽어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가을 분위기 잡기에는 이 시가 가장 적절했기 때문일 것이다.


“가만히 눈을 감기만 해도

기도하는 것이다.

왼손으로 오른손을 감싸기만 해도, 

맞잡은 두 손을 가슴 앞에 모이기만 해도, 

말없이 누군가의 이름을 불러주기만 해도, 

노을이 질 때 걸음을 멈추기만 해도, 

꽃 진 자리에서 지난 봄날을 떠올리기만 해도

기도하는 것이다”




가을은 왠지 기도해야 할 것 같은 계절이다. 

수험생 자녀를 둔 부모들은 누가 뭐라고 말하기도 전에 이 가을에 벌써 기도하고 있을 것이다. 

내년의 사업을 구상하는 사람들도 이미 기도하고 있을 것이다. 나의 힘이나 능력으로 감당할 수 없는 일들이 있기 때문이다. 

절대자가 있다면 그분에게 도와달라고 하고 싶은 마음이 든다. 

그때가 가을이다. 

그런데 기도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잊어버렸다. 

그래서 다른 사람에게 대신 기도해달라고 부탁한다. 

종이쪽지에 기도제목을 적어서 주기도 한다. 

어디서 기도회가 있다면 일찌감치 그 자리에 찾아가기도 한다. 

이문재 시인은 그렇게 해야만 기도하는 것은 아니라고 노래한다. 

내 마음에 간절함이 있다면 가만히 손을 잡기만 해도, 손을 모으기만 해도, 가던 길을 잠시 멈추기만 해도, 하늘 한 번 쳐다보기만 해도 기도가 된다. 

시인은 그 기도의 비밀을 알려주고 싶었을 것이다.



<오래된 기도> - 이문재     


가만히 눈을 감기만 해도

기도하는 것이다.


왼손으로 오른손을 감싸기만 해도

맞잡은 두 손을 가슴 앞에 모이기만 해도

말없이 누군가의 이름을 불러주기만 해도

노을이 질 때 걸음을 멈추기만 해도

꽃 진 자리에서 지난 봄날을 떠올리기만 해도

기도하는 것이다.     


음식을 오래 씹기만 해도

촛불 한 자루 밝혀 놓기만 해도

솔솔 지나는 바람 소리에

귀 기울이기만 해도

갓난아기와 눈을 맞추기만 해도

자동차를 타지 않고 걷기만 해도     

섬과 섬 사이를 두 눈으로 이어주기만 해도

그믐달의 어두운 부분을 바라보기만 해도

우리는 기도하는 것이다.

     

바다에서 다 와 가는 저문 강의 발원지를 상상하기만 해도

별똥별의 앞쪽을 조금 더 주시하기만 해도

나는 결코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받아들이기만 해도

나의 죽음은 언제나 나의 삶과 동행하고 있다는 평범한 진리를 인정하기만 해도

기도하는 것이다.


고개 들어 하늘을 우러르며

숨을 천천히 들어 마시기만 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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